올봄에는 유난히 선명한 꿈들을 많이 꾸었다. 깨어 있는 시간이 아주 적었다. 평생 못 잔 잠을 몰아서 받기라도 한 듯 잠을 잤고, 꿈을 꿨고, 암실을 갔다. 살아서 겪는 삶보다 생생한 이미지가 벌떡 일어나 눈 뜨고 있는 나의 온몸을 갈겼다. 그러면 나는 뒤로 나자빠졌다. 컴컴한 암실 속으로 기어들어 붉은빛에 의지한 채 지난 사진을 복기했고, 폐가와 절을 돌며 무당들을 만났다. 세상에 있는 언어로는 설명이 불가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이 창문 너머에서 내게 손짓했다. 깨도 꿈인, 자도 꿈인, 이 진공 상태의 밀실에서 탈출할 방법으로 교토로의 사진 여행을 택했다. 아림에게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지만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아림은 거절했다. 결국 혼자 여행을 가게 되었다. 안경도 없이. 우리는 레즈비언 커플답게, 사귀는 5년 동안 일주일 넘게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 모든 여행의 과정에서 아림을 그리워하게 된다. 교토에 간 첫날부터 아림을 그리워하며 한국을 떠나 온 것을 후회했다.
나는 다리가 두 개밖에 없는 삼각대.
교토역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다 진 밤이었다. 교토역 근처 교토 엘시엔트 호텔에서 묵었다. (교토에 갈 일이 있는 사람은 이 호텔에 가도 좋을 듯하다. 역과 완전 근처인데다가 교토의 호텔 치고는 싼값에 묵을 수 있다. 호텔 안에 목욕탕도 있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에 들어가자 잠이 다 달아났다. 알지 못하는 곳에서는 잘 수 없다. 어떤 공간을 찍지 않겠다는 것은 그곳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도착하자마자 2016호 객실을 찍었다. 밤을 꼴딱 새워 한 시간도 채 자지 못하고 일어났다. 일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 잠을 자지 않아도 다음 날은 온다. 어제가 오늘이다. 조식을 먹고 토하고 챙겨온 예쁜 옷을 입고 세 개의 카메라를 들고 전시장으로 향했다.

‘교토그라피’는 1년에 한 번, 4월부터 한 달간 교토에서 열리는 사진 축제다. 전시장, 대안 공간, 사찰, 문화재, 시장 등 도시의 온갖 공간에서 대규모의 사진전이 진행된다. 각 전시장은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근방에 있다. 이번 전시에는 15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그 중 교토그라피의 다섯 번째 세션에 해당하는 이시우치 미야코(Ishiuchi Miyako)와 유키 토우야마(Yuki Touyama)의 2인전을 보기 위해 아림과 떨어져 교토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2인전에서 이시우치 미야코는 엄마의 유품을 찍은 사진 시리즈인<Mother’s>, 유키 토우야마는 죽어가는 할머니 곁에서 할머니의 시선으로 바라본 풍경 사진과 <Line 13>의 사진을 걸었다. 죽은 사람 옆에서 사진 찍기, 죽어가는 사람 옆에서 사진 찍기. 둘은 이걸 한 거고, 이걸로 사진집도 내고 전시까지 한 거다. 존나 징그럽지만, 원래 징그러운 자리는 사진가의 자리다. 라고 생각하는 나에겐 역시 최고의 작가들이다.
사진을 처음 시작할 때 이시우치 미야코의 사진을 만났다. '이 작가처럼 찍고 싶다'하는 사진을 찾아가는 과제에서였다. 투명한 머리빗에 머리카락이 엉켜 있는 사진. 왜, 너무 좋은 작업을 볼 때는 그 작업을 만든 사람이나 그 작업을 둘러싼 다른 맥락을 전혀 모르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나? 나는 부러 이 사진에 대해서 찾지 않았다. 오로지 사진만 알고 싶었다.
![Mother’s #19 [comb], Ishiuchi Miyako Japanese, 2001, printed 2005](/embed/img_65ed768f3c6632.91619156.jpeg)
이제는 이 사진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나 맥락을 알게 되었지만, 역시나 이런 사진에는 언어를 더하지 않는 편이 좋다.
다시 올봄으로 돌아가자면, 난 계속되는 귀신, 무당, 절 나오는 선명한 꿈 때문에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상한 스위치가 켜져 전혀 제어가 되지 않은 채, 애먼 곳으로 에너지가 줄줄 새어 나갔다. 개 졸리고 개 피곤하고 아무런 에너지가 없어 존나게 누워있었다. 꿈에서도 사진에서도 귀신을 만나고 도망간 암실에서도 귀신을 만난 날에는, 더 이상은 살아가는 게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 길로 곧장 신점을 보러 갔다.
무당님: 신이 눈에 다 왔네. 어린데 60살이라 친구가 없는 거다. 26살이 사연이 너무 많다. 그러니까 그것만큼 알게 되는 거다. 아직 눈에 정신 박혀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겨라. 술집에 갔어도 수백 번을 갔고 손에 칼을 그어도 죽을 때까지 그었을 텐데. 사진 찍고 풀어서 괜찮은 거다. 아직 어리니까, 받을래? 안 받을래? 물으면 네가 중심을 잡아라. 아직 하고 싶은 게 있어요. 하면 된다. 아니라고 말해. 네가 그런 곳에서도 사진을 찍고 싶거든 장난질하지 말라고 딱 말하고 이겨 먹어야 한다.
하여튼 세상의 온갖 중요한 일들은 다 남자가 해왔다고 여겨지지만, 세상의 온갖 중요한 일들 중 유일하게 여자가 더 많이 했다고 인정 받은 일은 무당짓이다. 나는 그 여자들처럼 사진을 찍고 싶다. 세상에 죽음도 삶도 아닌 중간 지대가 있다면 그 중간 지대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 이건 죽은 사람들을 죽은 자들의 세계로 보내는 일이기도 하면서, 아직 살 사람들에게 내 살을 떼어주고 다시 살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이 일을 하게 되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이런 마음가짐으로 카메라를 들면, 대상과 본인(카메라)이 만나는 찰나-금속 철판 소리가 찰칵하고 울릴 때, 중간에 떠오르는 형상을 찍을 수 있다. 그걸 카메라라는 기계장치가 붙잡아 낸다는 건 정말이지 개쩌는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일이다. 찍는 본인에게도, 그걸 관람하는 사람에게도. 이시우치 미야코와 유키 토우야마의 사진에는 역시 그런 부분이 있다. 우리의 동기는 간단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계속해서 변해가고 움직이고 말랑거린다면, 그걸 유일하게 단단하게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이 사진이라면, 당연하게 사진가는 죽음(생)을 가장 붙잡고 싶지 않을까?
미끈한 노트북의 모니터가 아닌 전시장에서 마주한 사진들은, 끊임없이 흘리는 몸과 추억하는 자의 눈물이 섞여 있었다.(어떻게 설명해도 구리다. ‘그냥 좋았다’가 더 적절하다.) 사진이 종이 위에 올라가 있는 게 아니라, 종이 자체가 사진인 사진. 젖었다가 마르면서 신체처럼 줄어든 종이와 경계 없이 뒤섞인 이미지. 전시장은 긴 통로로 두개의 방과 이어져 있었다. 들어오는 문에는 긴 천이 걸려있었는데, 거기로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이 들락날락 했다. 바람을 타고 신발을 벗고 문으로 들어와 걷고, 통로 옆 중간 정원에서 날아가는 형상. 그 많은 것들이 날아가고 나서도 벽을 지키고 서 있는 사진. 죽음 이후에 시간이 지난다고 달라지는 것은, 이제 더는 예전처럼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제한 모든 것은 그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잠시 이시우치 미야코의 첫 사진 시리즈인 <Yokosuka Story>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는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이자 성노동자 여성들 그리고 미군기지가 있던 요코스카 지역을 찍으며 사진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는 이때 찍은 사진을 ‘검은 가래처럼 토했던 기억’이라고 말한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어린 시절 불안의 진원지인 요코스카로 돌아갔다. 그리고 미군 택시 운전사였던 엄마와 함께 출입이 금지된 일대를 돌며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 전 도망쳐야 했던 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셔터를 누르기 전 도망쳐야 했던 곳에 돌아가서 셔터를 누르는 일, 이걸 왜 해야 하는지는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아래는 성폭행 생존자인 소하일라 압두알리(Sohaila Abdulali)의 증언이다.
뭔가에 지고 있다는 느낌을 늘 싫어했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너무나 상처 입기 쉬운 나이였고(열일곱 살이었다), 내가 결코 그들에게 굴복당하지 않을 거라고 입증해야 했다. 나를 강간했던 놈들은 이렇게 말했다. 또 여기 혼자 오면 가만 안 두겠어. 나는 그 말을 고스란히 믿었기 때문에, 그 길로 가는 것이 늘 무시무시했다. 그들을 만나게 될까 봐 늘 두려웠다. 사실 그곳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밤에 그 길로 가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강도를 당하기도 했고, 따라서 위험한 곳이란 건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그런데 내 안의 일부분은 내가 그곳에 가지 않는다면 그건 그들이 나를 이긴 셈이 되는 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더욱더, <나는 그길로 갈 것이다>.
주디스 루이스 하먼, 『트라우마』, 파주, 사람의 집, 2022년 신판, 83p
이시우치 미야코와 소하일라 압두알리의 결심을 읽으며, 내가 성폭력을 당한 뒤 계속해서 비슷한 위협에 노출되고자 했던 욕망과, 모텔로 돌아가 옷을 벗고 사진을 찍었던 날들을 이해한다. 이 이해는 피해자이자 작업자인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중요한 사건(혹은 현장)을 만날 때, 그것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 그곳에 되돌아가는 것, 사진을 찍는 것, 글을 쓰는 것밖에 없는 사람들. 이럴 땐 ‘어떤 장면을 프레임 안에 담아낸다’보다는 ‘그곳에 직접 가서 직감적으로 어떤 강한 감정을 느낄 때 셔터를 누른다’가 더 알맞다. 그것에 지지 않고 힘을 겨루어 그 위로 올라탄 순간, 사진을 찍는 것. 이건 그 자체로 팽팽한 긴장감과 리듬감을 만든다. 아마도 이시우치 미야코는 이렇게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그의 사진에 기가 막히게 달라붙어 섞여 있는 검은 가래토. 그것은 깜빡이는 불안의 불빛이자 암실의 붉은 등. 붉은 등 주위로 빽빽하게 들어찬 어둠이자, 가난한 사람들이 음식을 먹어 치우고 내뿜던 입 냄새, 장판에 달라붙은 발 냄새, 사람의 기운으로 벗겨진 페인트, 지워진 문양, 끝끝내 지워지지 않던 상처의 흔적, 죽은 자들의 패션 센스와 원폭으로 인해 훼손된 옷. 소지품. 살아있어서 계속해서 흘리던 눈물, 가래, 오줌, 똥, 피. 떨어져 나와도 사라지지 않던 머리카락. 세 번 담겼다 말려진. 암실의 시큼한 약품과 몇백 몇천 장의 사진. 그 모든 것들 사이로 필름을 갈아 끼우고 카메라를 들고 걸어가는 여자. 그가 이시우치 미야코다. 존나 멋지지 않습니까? 일단 이 정도의 설명을 하면 그의 사진을 감상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더 이상의 설명은 줄이고, 전시장의 전경을 첨부한다.



이시우치 미야코만 존나 설명한거 같아 유키 토우야마에게 죄송하지만, 유키 토우야마 사진도 좋다. 미야코가 트라우마와 관련해 직감과 달라붙어있는 형태의 증거라면, 토우야마의 사진은 멀리서 그 시간을 견뎌내는 안경 쓴 미친 관찰자 같다. 눈물이 마르기 전 사진이자, 어떤 요령 없이 슬퍼하고 견디며 찍은 사진. 하여튼 첫날, 이 전시를 관람한 이후 둘의 사진책을 한 권씩 샀다. 이후 남은 모든날엔 식비를 500엔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유키 토우야마의 사진집 『Line 13』은 https://www.shashasha.co/en/book/line-13에서 볼 수 있다. 이 사진집은 유난히 좋았다.)
작가 소개
홍지영
사진을 주요매체로 활동하며, 신체를 기반으로 퀴어, 폭력, 섹슈얼리티를 연구한다.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들을 위해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보스토크 프레스의 공모 프로그램 '도킹 docking!'에 선정되어 『물의 시간들』을 출간했으며, 창작그룹 팀 W/O F.의 소속 작가로 기획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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