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기억1
1
테크나프, 제로 포인트, 마린 로드. 눈을 감으면 그날 먹은 멀미약과 두통약, 그리고 소화제가 섞여 약간 나른하고 어지러운 몸의 느낌과 그 와중에 빠르게 스쳐 지나가던 차창밖의 장면들이 생각난다. 비포장도로라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온통 바닥이 깨지고 부서진 길 위에서 차도 흔들리고 카메라도 흔들리고 몸도 멈추지 않고 흔들렸던 날. 관찰하고 확인해야 할 곳이 많아서 자주 차가 멈췄고 그때마다 최소한의 장비를 챙겨 들고 내렸다가 다시 타기를 반복했다. 이곳은 잠깐만 걸어도 녹음기의 겉면이 약간 녹아내린 것처럼 반질반질해지고, 카메라와 휴대폰은 가열되어서 잘 켜지지도 꺼지지도 않는다. 저장이 잘 되고 있는지 의심되는 기계를 한 손에 들고 뭔가를 보고 듣고 저장하는 시청각 매체의 한계에 대해, 그리고 동시에 그 매체를 이동시키고 작동시켜야 하는 또 다른 매체인 내 몸의 한계에 대해 생각했다. 그곳에서 나와 기계가 둘 다 잘 작동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어느새 서로에게 의존하며 엉성하게 끌어안은 빈 틈으로 기록해야 할 순간들을 이미 너무 많이 휘발시킨 상태였다.
차에서 내려 뜨거운 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녹음할 때면 햇빛이 너무 강해서 한 곳을 바라보는 시간이 10초를 넘기기가 힘들었다. 10초가 넘어가면 즉시 노출된 렌즈뿐만 아니라 그걸 들고 있는 팔과 얼굴이 따가워지고 눈동자가 바싹 마르는 느낌에 눈이 저절로 감겼다. 현재 이곳의 온도는 37도이지만 체감온도는 39도. 하나의 이미지를 입력하고 다음 이미지로 넘어가는 시간이 최소한으로 단축되고 신체는 외부의 사물들을 거의 감각하지 않는 것처럼, 혹은 모든 것을 자동으로 감각하는 것처럼 느리게 움직인다. 무언가를 응시하는 시간이 10초에서, 6초로, 다시 3초로 줄어들고, 이제 라이브 포토를 찍는 시간과 내가 한 곳을 보는 시간이 같아질 지경에 이르렀다. 어디선가 태우는 냄새가 난다. 매캐한 연기에 눈을 깜빡이면서 나는 방금 내가 사진을 찍었다고 생각했다.
기록 매체들이 뜨거워져서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이유 말고도, 그 기계들을 다 들고 걷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기계들을 사람들의 시선에 드러내고 걷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아 자주 그것들을 차에 두고 내렸다. 기록하러 온 사람이지만, 기록하러 온 사람처럼만 보이고 싶지 않은 이상한 마음이 내 안에서 생겨나고 있었다. 사실을 기록하는 것과 별개로 기억을 기록하는 몸은 점차 녹음기를 두고 내리는 대신 더 잘 들으려고 집중하고, 카메라를 두고 내리는 대신 오히려 더 잘 보려고 애썼다. 기록 매체는 오히려 손에 없을 때 그것을 대리할 수 있는 몸의 존재를 더 인식하게 했다. 나의 몸도 무언가를 저장하고 다시 전달할 수도 있는 기억 매체였다.
이럴 거면 장비를 왜 챙겨왔나 싶을 정도로 가벼운 몸으로 모든 이미지를 스캔하고 모든 소리를 들으려 애쓰다가도, 어떤 풍경 앞에서는 내 발끝만 보며 걸어야 했다. 마주 볼 용기가 없는 순간들이 예고 없이 수시로 나타나는 곳이었다. 그 순간들이 자주 떠오른다. 기록에 없는 기억들. 하지만 마음대로 그것의 종류와 범위, 유효 기간, 저장 위치를 선택해서 다시 볼 수는 없다. 기억은 의지와 상관없이 남고, 사실과도 상관없는 모양으로 움직이며, 나타났다 사라질 것이었다. 발끝에서 일어나는 흙먼지를 바라보며 그때 나는 보거나 듣지 않으면서도 잘 기억한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생각했다.

2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시내 일대의 풍경은 관광지답게 교통이 굉장히 번잡하다. 사람들이 매우 많고 빈부격차가 심해서 소똥 냄새와 쓰레기 태우는 냄새가 섞인 거리 양쪽에는 고급 호텔과 움막이 나란히 있다. 쓰러지는 건물과 세워지는 건물이 등을 맞대고 있다.
아이들이 계속 따라오고 자신도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난감해서 조용히 피할 수밖에 없었다. 헛된 희망을 줄 수는 없다.
가는 길에 구걸하는 할머니를 만났다. 여기선 매일 구걸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다. 거절이 자연스러워지는 내 모습에 놀란다. 친구는 돈을 줄 수 없다면 먹을 것을 나누자고 말했다.
저녁을 먹고 걸어서 밤바다를 봤다. 밤인데도 우리가 이방인, 외국인이라는 게 티가 나는지 어둠 속에서 집중되는 시선을 느꼈다. 달이 예뻤고 달무리가 아름다웠다.
공휴일이라 돌핀스퀘어 입구 시장에서부터 벌써 사람들로 붐볐다. 오늘은 기도하는 날이라서 1시부터 기도 방송 소리로 시끄러울 거라고 한다.

이곳에서 새로 일하는 분과 이야기를 좀 나누었다. 영어를 꽤 잘하는 편이고 방글라데시어, 로힝야어, 미얀마어를 모두 조금씩 하는 것 같았다. 나도 잘 모르면서 언어가 힘이 될 거라고 말했다.
여기 사람들은 ‘빤’이라는 걸 많이 씹는데 그걸 씹으면 화하고 맵고 입 안이 떫어진다. 담배처럼 중독 효과가 있어서 어린아이들도 많이 씹는다. 조개를 빻은 하얀 가루와 빨간 열매 등을 빤 잎에 싸서 씹는다. 중독되면 입이 붓는다고 누군가 알려주었다
캠프 주변에 내릴 때마다 아이들이 말을 건다. 차에 타려는데 한 남성이 자신이 영어 교사라고 하며, 저널리스트냐고 물으며 다가왔다. 얼마간 차 옆에 서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해 주는 듯했다. 대부분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우리가 가는 쪽이 위험하다고 경고해 주며 사라졌다.
한국에 돌아오고 한동안은 그곳 꿈을 꿨다. 그것들은 메모장에만 있는 장면들이었다. 자다가 깨면 이곳이 아직 방글라데시인지 어딘지 비몽사몽인 상태로 천장에 실링팬이 있는지부터 확인하곤 했다. 콕스바자르 시내의 호텔 방에서는 폭염 속에서 항상 전기가 부족해 에어컨이 거의 작동되지 않는 게 일상이었다. 그래서 실링팬을 항상 틀어 두었는데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휘청거리며 회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떨어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는 실링팬을 매일 밤 불안한 마음으로 쳐다보다가 잠이 들곤 했지만 미래의 위험보다는 현재의 고통이 더 신경 쓰이니 달리 어쩔 수가 없었다. 떨어지려는 실링팬을 응시하며 그날의 일지를 쓰다가 잠드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감은 눈이 다시 까맣게 감길 때까지 보이는 모든 것을 적었다. 어떤 장소까지만 되돌아갔다가 결국 잠들고,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면 실링팬이 항상 그 자리에서 여전히 불안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아마 실링팬은 언제든 떨어질 수 있지만 얼마간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는 실링팬보다 위태로운 장면들이 차고 넘쳤다. 항상 길가에서 타고 있는 쓰레기 더미의 매캐한 연기, 매번 하수구 입구에서 울고 있는 병아리 한두 마리, 혼잡한 도로 위에서 작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소년의 뒷모습, 작은 고양이와 염소들이 오토바이와 트럭 사이를 가로지르는 장면, 한번 눈을 마주치고 만져주면 계속 꼬리를 흔들며 따라오는 들개, 가방 사이로 거칠게 손을 내밀며 따라오는 아이들. 번잡한 콕스바자르 시내에서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지나쳐, 시내를 벗어나 차로 두 시간가량 달리면 나타나는 난민 캠프에서는 걱정되지 않는 장면을 찾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비가 오면 언제든 무너질 둑, 바람이 불면 곧 쓰러질 울타리, 아이들이 놀기엔 위험한 산비탈의 축구장, 간식으로 먹는 오염된 과자, 너무 먼 화장실, 울다가 스스로 얼굴을 닦고 일어나는 아이, 망고를 달라고 내미는 작은 손,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는 꼬마들 등등. 그리고 그토록 많은 걱정스러운 이미지 사이에 항상 평화로운 장면들이 섞여들었다. 환시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눈부신 순간들이었다.
탁한 물웅덩이에 핀 연꽃숲, 그 사이로 수영하는 아이들의 까맣게 탄 등, 발걸음 뒤로 따라오는 까만 눈동자, 유칼립투스 나무 아래로 불어오는 바람, 대나무가 가늘게 쪼개지는 소리, 달무리를 가리키던 검은 손가락, 검은 모래, 이름 모를 빨간 꽃. 땅에 맺힌 빨간 물방울, 주변에 흩뿌려진 노란 깃털, 확성기로 울려 퍼지는 아잔 소리, 히잡 밖으로 풍기는 시큼한 땀 냄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주디 갈런드의 목소리, 빛바랜 무지개 자수, 찢어진 받아쓰기 공책, 다 쓴 다홍색 립스틱, 까만 재를 뒤집어쓴 병아리, 울고 있는 염소, 울다 그친 아이, 손에 묻은 주황색 시럽 자국, 녹아 흐르는 아이스크림.
어느새 평화로운 이미지와 비참한 이미지가, 기쁘게 눈마주칠 수 있는 이미지와 눈을 가리고 싶은 이미지가 하나의 풍경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차례로 마주하는 죽음의 고비 사이로 생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곳이었다. 절망스러운데 살아가고 싶은 곳. 아이가 잡아당긴 나무를 따라 담장이, 대문이, 넝쿨이, 야자수가, 빨래가, 빨간 꽃이, 눈빛이, 기억이 한 방향으로 점점 기울어지는 걸 느꼈다.
3
“바다를 본 적 있니?” 이렇게 물으면 아이들은 아마도 입가에 하얀 조갯가루를 묻힌 채 웃을 것이다. 긴 해안 도로를 따라서 달리다 보면 밀집된 거대한 난민 캠프 구역이 빠르게 사라지고 폭포와 산, 강, 호수, 바다로 이어지는 관광지와 고급 호텔, 유원지, 식당가, 혼잡한 시내 거리가 순식간에 풍경을 바꾸며 나타났다. 나는 아마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해변에서 흰색 소라 껍데기를 고르고 있었을 것이다. 소라 껍데기 바깥에서는 파도 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음악, 낯선 언어로 읊조리는 여성의 노랫소리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귀에 대는 순간 이 모든 소리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듯 멀어졌다. 그리고 밀려오는 소리. 그것은 깊은 물 속에서 울려 퍼지는 친숙한 웅성거림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작은 물거품 소리를 내며 다시 거대한 숨소리처럼 퍼져나간다. 소라 껍데기 안쪽의 굽이진 길을 따라 귀에 닿았다가 그 길을 되돌아가며 사라지는 소리. 나타남과 사라짐의 반복 속에서 파도 소리 같은 게 들리는 것도 같았다. 세계에서 가장 긴 이 해변을 따라 계속 걸어가면 어제 갔던 난민캠프 근처에 도착할 수 있겠지. 그곳 사람들은 바다가 지척인데도 눈을 감아야 바다를 떠올릴 것이다. 콕스바자르에서의 마지막 밤, 난민 캠프와 몇 시간 떨어지지 않은 해변에 앉아 관광객들의 웃음소리와 진짜 파도 소리를 들으며 긴장된 몸이 풀리는 걸 느꼈고 보름 동안의 기억이 어지럽게 흩어지는 걸 보았다.
눈을 감으면 지금도 콕스바자르 해변의 습한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올 것만 같다. 그곳에선 모래사장에 길게 늘어선 가판대에 산처럼 쌓인 소라, 고동 등의 조개껍데기들을 볼 수 있었다. 콕스바자르가 조개 공예품이 유명하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많은 조개가 바다에서 나온다는 게 새삼 믿기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긴 해변을 따라 조개가 많이 떠밀려 와서인지, 세계에서 가장 값싼 노동력으로 조개를 많이 채취해서인지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 관광객으로 가득한 해변을 걷다 보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색깔과 문양의 조가비들이 보이고, 화려한 겉면 위에 더 화려한 무늬를 만들기 위해 위험한 용액을 맨손으로 다루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정성껏 조가비 표면에 그림과 글자를 새기며 관광객이 불러주는 기억을 좁은 공간 안에 빼곡히 채워 넣는다. 자신의 추억을 조개껍데기 하나에 다 담을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의 눈앞에서 조개의 표면이 하얀 연기를 내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볼 때마다 기억나지 않는 사진들이 여럿 눈에 들어왔다. 아마 사진을 찍을 여유도, 그럴만한 상황인지 헤아릴 마음도 없어서 손에 쥐고만 다녔던 휴대폰이 땀과 접촉하며 저절로 켜졌다 꺼지길 반복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손가락을, 흙바닥을, 하늘을, 잡초를, 뒷사람의 발을 보았겠지. 작동하지 않는 몸과 작동하지 않는 기계가 우연히 접촉해서 만들어 낸 이미지들은 이것이 누구의 기억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나는 분명 봤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을 가만히 응시한다. 사진을 응시하는 것만으로 알아챌 수 없는 기억들이 여전히 사진 속에 가려져 있고, 가림막도 스크린도 결국 내 손 앞뒤에 조용히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만 선명하게 떠오른다. 어디에나 내 손이 남아있다는 친근한 기억이 기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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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동안 뒤쫓는 몸짓은 도망치는 몸짓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둘다 어떤 것의 뒷모습에 반응하는 일이며, 다른 방향의 시간을 기꺼이 선택하는 일이며, 무언가를 향해 한껏 뒤로 당겨진 자세로 몸에 미리 힘을 싣는 일이지 않나. 도망치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며, 도망친 곳에서 또 무언가를 결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뒤쫓는 몸짓도 어떤 기억에 반응하는 것일 수 있으며, 도망치고 뒤쫓는 앞선 여정에 빚지고 있을지 모른다. 도망치듯 떠나온 곳의 기억을 다시 쓰기 위해 기울어진 자세로 덜컹거리는 차, 흔들리는 길, 어지러운 해변으로 반복해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 개의 기억을 뒤쫓으며 나는 세 개의 사실을 되찾는다. 그건 기억의 화자가 바뀌는 지점마다 청자도 한 명씩 늘어난다는 것, 그리고 제발트도 알고 있듯이 기억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기억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되감는 행위 속에서만 조금씩 무언가 달라지고,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1 이 글은 제발트가 남긴 다음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실과 기억은 전혀 다르다."(W. G. Sebald. (1990), Schwindel. Gefühle. 배수아 (역) (2014) <현기증. 감정들>. 문학동네. 12p)
작가 소개
전솔비
경계와 타자의 문제를 고민하는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전시와 출판의 형식을 오가고 있다. 예술가들의 작업 주변에서 나의 글은 과연 어떻게 현장과 협업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난민성, 수행성, 아카이브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상실과 애도라는 단어 안에서 영화적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우연과 상상으로 현실을 작동시키는 이미지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