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폭력적인 전시 감상 뒤로는 급격하게 우울증이 도졌다. 걸으면서 울고 밥 먹으면서 울고 호텔 방에 처박혀서 울고 아림에게 매달려 전화 받아 달라고 하며 멀리서도 아림을 괴롭혔다. (회상하니 참 좋은 시기였던 것 같다. 물론 그때는 진지하게 죽고 싶었다) 그리곤 다시 만날 아림을 생각하며 아침저녁으로 목욕탕을 가서 피부를 가꿨다. 첫날 실수로 목욕탕에 속옷을 챙겨가지 않았는데, 덜마르고 깨끗해진 뜨거운 몸 위에 얇은 옷 한 겹만 입은 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는 상황이 주는 잔잔히 흥분되는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남은 날에도 모르는 척 속옷을 입지 않은 채 목욕탕에 갔다. 그리곤 방에 돌아가서 매일 일기를 썼다.






이어지면서 닿는 것들은 즐거운 게 없다. 진공된 안으로 들어가면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지고.
말이 짧아지고.
찍을만한 것이 된다.
눈이 배로 늘어난다.
안에서 바깥으로 보는 눈. 바깥에서 안으로 보는 눈. 뒤에서 당기는 눈. 앞에서 재촉하는 눈. 멀리서 보고 있던 눈. 소리로 깨우는 눈. 일어나라고 시발 소리 지르는 눈. 예측으로 알려주는 눈. 다 틀리는, 다 망하고 무너져서 빨아서 움찔거리는 물을 찔끔거리는 눈. 촉감으로 확대되는 본 적도 없는 것을 상상하는 눈. 보게 될 것을 보는 눈. 안 봐야 할 것을 보는 눈. 이미 잠들었어야 하는 눈. 잘 수가 없는 눈. 핏대가 선 눈. 핏물 찬물 더운물 가리지 못하는 눈. 한꺼번에 떠지는 중고 카메라 상점에 있는 수백 대의 카메라와 한꺼번에 켜지는 그걸 썼던 사람들의 눈과 그 카메라를 쓴 사람이 찍었던 사람들의 눈과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눈. 그걸 세차게 부어 넣어
다 엉겨붙여.
뜨겁게 쳐내면.
거기서 나오면 밥 먹고, 잠자고, 말이 길어지고, 찍을 것이 없어지거나, 찍었던 것이 이유가 없어진다. 옆 방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그걸 보는 눈.
눈이 배로 늘어난다.






돌아올 즈음에는 김치찌개 생각과 아림이 생각을 번갈아 가며 했다. 낮에는 전시를 보고 저녁에는 아림의 선물을 고르러 여기 저기를 걸어다녔다. 아림을 닮은 인형과 아림에게 줄 야한 잡지, 성인 용품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튼 이시우치 미야코와 유키 토우야마의 사진전을 시작으로 총 13개의 전시를 봤다. 교토그라피 전시 전부는 결국 못 봤다. 체력부족, 시간부족(내년에 가실 분들은 전시를 보는 시간만해도 넉넉히 7일은 잡으면 좋을 듯 하다). 여기 저기 다니며 눈물 줄줄 흘리고 나와 그 다음 전시를 보고 눈이 휘둥그래져 다음 전시를 보고 또 보고 다음날도 놀람과 감탄의 연속으로 전시들을 감상했다. 하루 이틀이 지난 다음에는 급기야 이런 대규모의 사진 전시들을 처음 본 것에 대한 억울함이 밀려왔다. ‘이런 거 너네끼리만 보고 있었구나?’라는 억울함. 사진에게 이렇게 오래되고 좋은 장소를 내어주는 것에 대한 부러움. 사진에만 집중한 전시를 볼 수 있다는 건 내게 황홀감 그 이상의 어떤 꿈 같은 걸 가져다줬다.이래서 사람들이 어릴 때 여행 많이 다니고 많은 걸 보라고 말하는구나. (물론 시발 어릴 때 여행을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여행을 마치며 꼭 기억하고 싶었던 것이 있다. 사진이 걸려 있어도 눕혀있어도 옆으로만 이어지는 사진이 있고, 공간이 필요한 정말로 공간을 차지하는 사진이 있다는 것. 유 야마우치(Yu Yamauchi)의 사진이 공간에서 압도적이었다. 마법진이 쳐진 것처럼 사진이 기운을 뿜고 있달까. 이런 사진은 사진집이나 인터넷으로 감상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사진 전시를 하게 된다면 꼭 이 점을 잊지 않아야지 생각했다. 옆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위로 솟구치는 뚫어버리는 사진의 위력이 있더라. 나는 돌아와 이 사실을 기억하고 이시우치 미야코의 일대기를 찾아보며, 슬금슬금 우프의 《모텔전: 눈 뜨고 꾸는 꿈》 전시를 기획했다.
작가 소개
홍지영
사진을 주요매체로 활동하며, 신체를 기반으로 퀴어, 폭력, 섹슈얼리티를 연구한다.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들을 위해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보스토크 프레스의 공모 프로그램 '도킹 docking!'에 선정되어 『물의 시간들』을 출간했으며, 창작그룹 팀 W/O F.의 소속 작가로 기획을 맡고있다.
@2asy_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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