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TATION 11. 02 SAT -더미덤피이미지 |
토요일 밤 클럽 모데시 앞에는 사람들이 줄 서 있었지만, 여느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들은 오늘 모데시가 평소의 모데시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닌척해도, 사실은 그렇다. 어쩌면 어떤 이들은 정말 그 사실을 모르고 모데시에 왔을 수도 있지만, 입구에 놓인 포스터와 안내를 듣자마자 곧 오늘은 주최자가 따로 있는 파티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래서 발을 돌렸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그래도 모데시에 들어왔을 수 있다.
어두운 클럽에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는 사실은 사람의 마음을 참으로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평소에 클럽은 자주 찾지만, 사진은 좀처럼 보지 않는 사람에게도, 평소에 사진은 보러 자주 가도, 클럽은 좀처럼 찾지 않는 사람에게도 그럴 것이다. 춤을 춰야 하는지 사진을 봐야 하는지, 춤을 추면서 사진을 봐야 하는지 영 마음이 놓이지 않는 자리인 것이다.
난 클럽에 잘 가지 않는다. 내가 클럽에 가지 않을 이유는 너무 많다. 일단 클럽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정말 시끄러우며, 테이블을 잡지 않는 이상 앉아있을 곳을 찾기 힘들고, 수시로 퍼스널 스페이스를 침범 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길에서 밤을 새우거나, 밤늦게 택시 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춤을 추는 것보다는 이불 속에 누워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클럽에 가본 것은 레즈비언 클럽 몇 번이 전부였는데, 그곳에 가면 흡연실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흡연실이 너무 답답하면 밖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모데시의 옥상은 전부 흡연 구역이었다. 그 점이 나를 매우 들뜨게 했다. 실내 흡연이 금지된 이후로, 여럿이 편하게 앉아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장소를 찾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나는 넓은 흡연 장소가 있는 공간에 가면 귀향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내가 처음 집을 뛰쳐나왔을 때, 옥상에서 친구들과 담배꽁초를 매일 같이 수북하게 쌓으며 새벽까지 정말 중요하고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며 울고 웃던 시간이 나에게는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만큼 아직 담배를 끊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은 언제나 나를 유쾌하게 만든다.
옥상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니 홍대 클럽 거리를 빼곡하게 채운 사람들이 보였다. 지난 주말에 나는 이태원 거리에 있었다. 올해는 할로윈이 평일이어서 그런지 지난 주말에도 이태원 거리에 할로윈 분장을 한 사람들이 빼곡했는데, 오늘도 홍대 거리에 할로윈 분장을 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10.29 이태원 참사 이전까지 나는 단 한 번도 할로윈 밤에 거리를 걸어본 적이 없다. 이상하지? 참사 이후부터는 해마다 할로윈 밤에 거리를 걷고 있으니. 사건은 이렇게 사람을 바꾸어 놓는다. 밤이 늦으면 좀처럼 집 근처를 떠나지 않는 내가, 술을 마셔도 동네를 잘 떠나지 않는 내가, 2년 전부터는 할로윈 밤마다 거리를 서성인다. 이상하게 그날만 되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하게 보게 된다. 이 곳에서도 나는 담배를 피우며 슬쩍슬쩍 음침하게 이곳에 누가 왔나 사람들의 얼굴을 열심히 훔쳐봤다. 드물게 아는 얼굴도 보였지만 먼저 인사하지는 않았다. 조금은 수줍었던 것 같다.
재떨이와 함께 놓여 있는 사진집을 보고 싶어서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양동민 작가가 찍은 작가의 어머니 사진들을 오래 보고 나니 갑자기 쓸쓸해졌다. ‘엄마 보고 싶다.’ 담배를 한 개비 더 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는 담배를 정말 싫어하고, 담배를 피우는 나는 더 싫어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엄마와 담배가 공존해야만 느낄 수 있는 진실이 있다. 핸드폰 플래시를 켜야만 볼 수 있는 사진처럼.
옥상에서 펄럭이고 있는 사진들과,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오가는 두꺼운 사진집들을 바라보며, 훼손에 대한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이곳에 놓인 것들은 훼손을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서서히 열화 되는 것들 사이에서 사람들이 간간이 몸을 흔들고, 대화를 나누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카페에 오래 있는 것이 불편한 이유는 카페는 너무 밝기 때문이다. 잔이 비워지면 금세 들키는 곳이다. 그래서 잔이 비워지면 이제는 그만 나가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클럽은 한 번 입장하면 누구도 나가라는 눈치를 주지 않아서 좋다. 춤을 추면 공간을 점유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은 일 같다.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아볼 수도 없는 사진들에 둘러싸여 소리를 지르고 몸을 흔들었다. 처음에는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사진을 찾기 위해 벽을 훑고 다니다가, 나도 그냥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덩실덩실 몸을 흔들었다. 좀처럼 놓아지지 않는 정신을 자꾸 떠밀어 내며 열심히 몸을 흔들었다. 정신을 놓지 못하는 클럽, 음악이 고조될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나를 괴롭게 했다.
큰 소리로 환호하고 온몸을 흔드는 사람들 옆에서 재생되고 있는 곽서영의 영상에 재생되고 있었고, 나는 헤드폰을 끼고 헤드폰 틈으로 스며들어오는 디제잉 소리와 함께 곽서영의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했다. 영상은 오키나와와 서울을 오가며 집을 잃은 사람들, 영원히 땅을 배회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제는 사라진 집을 하나 알고 있다. 살구꽃을 피워내던 나무를 한 그루 알고 있다. 이제는 주소지가 달라진 작은 집이 있던 자리를 기억한다. 나는 그곳에서 가족들과 몇 해를 살았다. 거주민들은 아파트를 짓기 위해 그 작은 집과 이웃에 있는 또 다른 작은 집들이 부수는 일에 기꺼이 찬성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집착적으로 그 집이 사라지기 전까지 그 집과 그 집을 둘러싼 골목을 틈틈이 영상으로 찍어둘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영상도 어떤 핸드폰과 함께 사라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곽서영의 영상을 보며 그 작은 집을 애도할 방법을 찾아 헤맸던 시간을 떠올렸다.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을 나와 처음 독립해서 살게 된 집은 재개발 구역이었다. 그리고 그 집을 나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재개발을 꿈꾸다 실패한 구역이다. 돈이 없는 나는 계속 재개발 구역의 언저리를 헤매고 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난 내가 매일 불안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사실이 끊임없는 재개발과 함께 자라온 시간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불안해서 기록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난해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가운데 형제자매를 기록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던 것 같다. 나는 한 희생자의 언니와 세 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 참사 초기, 소셜미디어에 수많은 현장 사진과 영상이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그분은 현장 사진과 영상이 빠르게 사라지는 가운데서 지푸라기라도 잡듯 모든 사진과 모든 영상을 찾아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동생을 찾고 싶어서. 동생이 어디서 어떻게 희생되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얼마나 많은 사진과 영상을 찾아보았는지 그분은 결국 영상에서 쓰러져 있는 동생을 찾았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내 안에서 이미지를 둘러싼 윤리에 대한 어떤 이론도 무력하게 느껴졌다. 모순만이 진실이었다.
유가족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작업을 하는 내내 나는 유가족들은 하고 싶은 말 사이에서 해야 하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을 골라냈고, 나는 내가 느낀 것 사이에서 쓰고 싶은 것과 쓸 수 있는 것, 쓰면 안 될 것 같은 것을 골라내는 작업을 반복했다.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쓰는 기록은 작업 사이사이 비집고 들어오는 검열로 인해 우리의 애도를 끊임없이 지체 시키고, 방해하고 불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을 이제 그만 인정하고 싶다. 쉬는 시간마다 함께 피웠던 담배의 맛, 그의 mbti 철학, 가방에 걸려있던 귀여운 키링, 함께 사는 강아지, 이런 것들을 적지 못한 것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공적인 애도는 복수(複數)의 사적인 애도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애도의 독점을 막는 것만이 애도를 가능하게 한다. 이곳에 놓인 이미지들이 지시하고 있는 상실은 춤추고 흡연하고 웃고 떠들고 상념에 잠긴 사람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애도 될 수 있다는 힌트를 주고 있었다.
이미지가 사진이 되면, 이미지는 구부러졌다 펴지는 물성을 가지게 된다. 사진을 선명하게 볼 수 없다면 사진은 무슨 의미가 있지? 사진이 놓일 법하지 않은 자리에 열심히 사진을 놓기, 사진을 만지기, 사진 앞에서 춤을 추기, 바람에 펄럭이기, 담뱃재 묻히기, 사진을 구기기, 사진을 보지 않기, 사진을 찾아다니기, 사진을 찾는 것을 포기하기, 사진을 보고 잊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진을 영원히 기억하기,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사진을 금세 잊어버리기, 사진과 함께 사진 찍기, 사진을 뒤로 하고 내 사진을 찍기, 그리고 지우기, 그럼에도 다시 사진을 찍기. 사진이 되어버린 과거를 손으로 만지고 줄이고 늘리고 찢고 접고 붙이고 중복하고 대량생산 해내기. 기억을 손으로 만져보기, 쓰다듬기, 다시 쓰다듬기… 기억을 가지고 놀아보아야만 우리는 기억과 관계 맺는 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만질 수 없이 벽에 걸린 사진을 볼 때마다 사진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지 우물쭈물하게 되는 것도 그것을 훼손해볼 수 없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
여자 화장실에는 수많은 입술 자국이 찍혀 있었다. 이것도 작품일까 잠시 생각했다. 이 공간이 의도한 것인지, 이곳에 다녀간 사람들의 자발적인 입맞춤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런데 기억을 덧입히는 것도 훼손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벽은 훼손된 것일까, 기억된 것일까? 나도 슬쩍 입맞춤 하나를 남기고 나왔다.
몸을 움직일 때만 기억나는 진실이 있다면, 동일한 장소에 다시 존재해야만 알아차릴 수 있는 상실이 있다면, 그렇다면 기꺼이 우리는 재차 그 장소에 방문해 다시 몸을 흔들어야 할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지 않기 위해, 어떤 기억을 회피하지 않기 위해, 도무지 언어를 가지지 못한 것을 애도하고, 방어기제들을 배신하기 위해, 우리는 같은 장소로 찾아가 다시 그때처럼 몸을 흔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반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복함으로써만 새롭게 생성되는 것들이 있다. 반복할 때만 발명되는 애도가 있다. 애도를 발명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 모여 반복하고, 번복하고 있었다.
어느새 클럽에서 사진을 봐야 한다는 긴장감을 사라지고 클럽에 사진이 있다는 사실에 완전히 익숙해졌거나, 혹은 완전히 잊어 갈 즈음 이곳을 떠나려고 하다가 평소에 좋아하는 동료 커플과 마주쳤다. 레즈비언 클럽에 같이 가지 않겠냐는 제안에 나랑 같이 있던 애인 모두 웃었다. 결국 레즈비언 클럽에 가진 않았다. 대신 모데시를 나와 애인과 함께 마이멜로디 머리띠를 하고 인생네컷을 찍었다. 택시를 잡아타니 택시 기사님이 이태원에서 오는 길이라며 이태원은 아직도 클럽에 줄이 길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깊은 안도감을 느끼며 이제야 조금씩 정신이 놓이는 것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작가 소개
연혜원
고양이 하쿠랑 함께 살고 있다. 투명가방끈 활동가이자 사회학 연구자이다. 퀴어를 중심으로 기획하고 글을 쓰며 살아간다. 『퀴어돌로지』(2021)와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2023)를 함께 쓰고, 희곡 『가장자리를 위한 복수 노트』(2024)를 썼다. 퀴어예술매거진 《them》을 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