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나도 명확해서 표현에 한계를 가진 매체로서 사진은 예술 작품에서 얼마나 제한적으로 작동되는 것일까? 이미 너무 많이 죽어버린 사진이라는 매체가 예술 전반에 포섭되었을 때, 그 고유의 특성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황지원, "포스트 포스트 포스트 포토그래피 : 사진의 장례식은 언제 끝나나", 「마테리알 9호」. 2024
매번 회귀하는 사진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은 꽤 긴 시간 동안 사진 작업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기나긴 침묵을 이어가던 중 다소 이질적으로 찍힌 현다혜 작가의 사진을 보았다. 아, 사진을 언어로만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구나. 더군다나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들어진 단어가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전시를 통해 사진을 보여주고, 말함으로써 사진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형성할 수 있을까.
황예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현다혜 안녕하세요. 저는 사진하는 현다혜입니다.
황지원 안녕하세요. 저는 간간이 전시를 만들고 글을 쓰고 있는 황지원입니다.
황예지 저희가 어쩌다 보니 흉흉한 시기에 뵙게 되었는데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현다혜 뉴스 보고 화났다가 또 다른 뉴스 보고 화나고의 반복인 것 같아요.
황지원 사무실에서 뉴스를 틀어 놓고 일하는데요. 화났다가 회의감도 느꼈다가, 주말에 어떻게 화낼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하고 있어요.
현다혜 예지 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황예지 저도 비슷하게 뉴스와 온갖 이미지들에게 휘둘리면서 지내고 있지요.
어쨌든 저희가 모인 이유가 현다혜 작가님 때문 아니겠어요? 얼마 전에 첫 개인전을 치르셨잖아요. 전시 소회가 어떠실까요?
현다혜 후련해요. 하기 전에는 ‘이다음에 무얼 할지 모르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이 컸어요. 저는 특정한 대상을 정해놓고 작업하는 게 아니라, 저한테 달라붙어 있는 불편함을 계속 쫓아가거든요. 이 다음엔 뭘 말해야 하지? 말하고 싶은 게 사라지면 어떡하지? 그런 막연한 불안이 있었는데요. 오히려 개인전을 끝내고 나니까 아쉬운 점이 많은 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아쉬움이 다음 작업으로 이어질 테니까요. 기분 좋게 후련한 상태예요.
황예지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는 시점과 첫 개인전을 여는 시점에는 시차가 무조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요. 작가님은 그 시차를 어떻게 보낸 것 같아요?
현다혜 이 텀이 저한테는 정말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동안 기획전이나 단체전을 하면서 사진으로 하는 역할을 계속 고민해 왔으니까, 이번 전시 준비의 과정이 그나마 수월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개인전을 했으면 아마 못 했을 것 같아요.
황예지 전시도 이상하리만큼 훈련이 필요한 행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 개인전은 언제부터 어떻게 준비하신 거예요?
현다혜 작업이 먼저고 전시가 그다음이었어요. 작년에 대구 사진 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Capping, 2023>이라는 작업을 시작했고요. 이 작업을 본격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를 열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황예지 <Capping, 2023>은 어떤 작업인지 독자들에게 들려주신다면?
현다혜 오랫동안 작업을 하지 않았던 기간이 있었어요. 뭘 찍을지가 가장 큰 숙제였어요. 한참 생각하다가, 솔직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자. <Capping, 2023>은 저희 어머니의 노동에서부터 시작된 작업인데요. 어머니가 거의 10년 넘도록 야간 공장에서 일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이 사실을 사람들 앞에서 말을 못 하는 거예요. 우리 엄마 여기서 일해 라든지, 우리 엄마 밤에 일해 라든지. 왜 숨기며 지냈는지 생각해 보니, 밤에 일하는 공장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이미지를 그동안 제대로 본 적 없기 때문에 말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었어요. 투쟁하는 노동자-연민의 시선으로 볼 수 밖에 없는 노동자의 이미지가 아닌- 그들이 가진 모습 그 자체로써 사진으로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지 모색했던 작업이 <Capping, 2023>이에요.
황예지 비가시화된 밤의 노동자들을 찍은 거잖아요. 그 밤에 노동자들이 너무나 찬란하게 느껴졌어요. 근데 현다혜 작가가 찍는 인물은 이상하게 찍혀본 적 있는 사람들 같아요. 너무 이상하죠.
현다혜 너무 능숙해서 이상하죠.
황예지 너무너무 이상해요. 저는 작가님의 사진에 쾌감을 느끼는 게, 사진이 어느 자리에 가도 디바 같아요. 사진이 디바가 돼요.
현다혜 디바, 되게 좋네요.
황예지 작가님의 사진은 뭘 찍어도 사진 자체가 적정한 미감과 톤을 지녀서 너무 놀랍거든요. 문학이랑 참 잘 어울리는 느낌도 나고요. 사진에서 뭔가를 퇴고할 수 있는 사람인가 싶어서 재밌어요. 사진 찍을 때 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 건가요?



현다혜 <Capping, 2023>에서 제일 중요했던 건 사람들의 얼굴이었어요. 오산 공장 단지에 가서 회사나 공장 앞을 어슬렁거리면서 사람들의 얼굴을 계속 봤어요. 어떤 사람은 기억하기도 하고. 회사 안에 들어가 있는 시간도 되게 길었거든요. 휴게실 안에서 어떤 대화들이 오가는지, 어떤 사람의 캐비넷 안이 어떤지, 그리고 어떤 얼굴로 준비하는지 계속 보면서 사진에 필요한 얼굴들을 찾았어요. 한 번은 백반집에서 이모님들이랑 밥을 먹는데, 저쪽 테이블에서 어떤 분이 저희 테이블에 계신 이모님한테 인사를 했어요. 그분의 얼굴을 딱 봤는데, 그 얼굴에 제가 너무나 사로잡힌 거예요. 이 사람의 얼굴이 무조건 <Capping, 2023> 안에 들어와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맞춰서 모든 걸 준비했죠. 섭외도 그렇고, 일정도 그렇고.
<Capping, 2023>은 매번 그랬던 것 같아요. 적합한 얼굴을 찾으려고 어슬렁거리면서 돌아다니고, 어떤 사람과는 시간이 쌓여서 더 친밀해지기도 하고. 사진에서 알 수 없는 거리감이 나온 건, 이분들도 제가 동료의 딸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최대한 그곳에서 밤을 함께하려 했던 시간이 사진에 나온 건가 싶기도 해요.
황예지 전시에 핵심으로 심어놓은 이미지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여성분이 명화처럼 쓰러져 있는 사진이 기억에 오래 남았어요. 여성 노동자의 육중한 피로를, 다리가 부어서 양말 자국이 생긴 살 한구석으로 딱 보여주고 끝내버리는, 그 느낌이 되게 좋았어요. 그 사진 하나만 봤어도 됐을 전시였다고 생각하거든요.
현다혜 엄마의 발이 너무 미워 보였던 시절이 있었어요. 우리 엄마 발만 그런 줄 알았거든요. 근데 공장에 있다 보니까, 그분들의 발이 다 성하지가 않은 거예요. 운동 선수처럼 훈련으로 닦아진 발들은 고귀한 신체라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렇게 마주할 이미지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Capping, 2023>에서 주요 인물이었던 이모의 낮 시간대를 찍어보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한 장이 제대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죠. 그리고 사진이 재밌는 점은 우연성에서 오는 것 같아요. 아무리 촬영 계획을 철저히 하고 가도 계획대로 안 되거든요. 사실 처음에 제가 찍으려 했던 이미지는 이게 아니었어요. 그냥 거실에 창과 명확하게 햇살이 떨어지는 이미지를 생각했어요. 근데 이제 집을 둘러보다가 무겁게 생긴 돌침대가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걸 보니까 무조건 여기서 찍어야겠다 싶었어요.
황예지 다혜 작가님 사진을 보면 특수하게 체화된 미감이 있는 것 같아요. <나의> 작업을 얘기 안할 수가 없는데. 그 작업도 그렇고, 세월호 사진도 그렇고, 이상하리만큼 아름다운 미감은 대체 어디서 생성됐을까요?
현다혜 처음에는 일단 막무가내로 사진을 찍거든요. 그래서 제 사진을 보기가 너무 힘든 순간을 늘 거쳐요. 그 다음에 제가 찍어낸 사진들을 비껴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 같아요. <나의, 2018> 때도 처음에 그냥 35mm 카메라로 플래시 터뜨리면서 할머니를 찍었는데, 나중에 다시 그 사진들을 보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Capping, 2023>도 ‘공장 노동자’라는 대상을 찍었을 때 알 수 없는 거리감, 그 사람들의 뒷모습만 찍으려고 하고, 조형적으로 찍으려고 하고, 이런 것에서 피사체에 대한 저의 선입견이나 편견이 보였어요. 이렇게 찍는 게 맞을까 고민하면서 제가 피하고자 하는 이미지들을 먼저 생각하고, 그걸 비껴나가는 방식으로 추려 나간 것 같아요.
황예지 진짜 사진으로 퇴고하셨네요. 그 느낌이 되게 좋아요. 피사체에 어떤 서사가 있는데, 그 미감으로 그 무엇도 동정하지 못하게 하는 처단이 너무 깔끔해요. 예를 들면 <아노라>,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션 베이커(Sean Baker) 감독도 그런 전환과 채색의 행위를 한다고 느껴지는데요. 작가님은 그게 과하지도 않아요. 오퍼시티 20% 정도 올린 묘한 느낌이….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영민한 행위다. 어떤 작가의 사진을 좋아했어요?
현다혜 로버트 애덤스(Robert Adams)를 좋아했어요. 처음 생긴 사진집이 로버트 애덤스의 <Summer Night>이라는 흑백의 밤 풍경 사진이에요. 그 사진들이 묘하게 《밤과 밤》에 어울리는데, 그런 아름다운 사진들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황예지 예전에 마사히사 후카세 인터뷰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그 사람도 머리로 사진을 찍기보다는 카메라와 연동된 육체로 사진을 찍은 느낌이었어요. 실제로 카메라와 자기가 육화에 이를 때까지 사진을 찍는다, 내 다른 장기처럼 느껴질 때까지, 그런 느낌. 현다혜 작가님에게 카메라는 귀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감각 기관까지는 된 것 같다.
현다혜 카메라…. 근데 제가 카메라가 콘탁스 T2 하나밖에 없어요. 작업할 때마다 남의 카메라를 빌려서 쓰는데. 처음에는 재정적인 이유가 컸거든요. 돈이 없으면 제일 먼저 파는 게 카메라였기 때문에. 예전에는 고정된 좋은 카메라가 없다는 이상한 부채감이 있었거든요. 사진가가 500만 원짜리 카메라 한 대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콘탁스 T2 똑딱이밖에 없다는 부채감. 이제는 카메라를 빌리는 게 익숙하다 보니까 그냥 작업에 맞는 카메라를 제때제때 골라 쓰는 게 저한테 제일 맞는 방법인 것 같아요.
그리고 중학교 때 친구가 없었어요. 주말에도 아무도 안 만나고 그냥 집에서 영화 보고 이미지를 수집하는 게 취미였어요. 예쁜 이미지들을 미친 사람처럼 수집해서 PMP에 넣어놓고 다녔는데요. 그 이미지들을 보기만 하다가 그러면 내가 사진을 찍어서 이 이미지들을 만들까? 하면서 사진을 찍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제가 뭘 보고 있는지가 항상 중요해요. 왜 이렇게 찍는지, 이렇게 예쁘게 보이려고 하는 사진들은 무엇인지. 계속 의심하고 찾아가야 하는 고민 같아요.


황예지 저는 전시에서 또 좋았던 게, 사진을 계속 훑어봐야지만 감각이 올라오는 전시였어요. 보통 대단히 설명적인 전시가 많으니까요. 전시 서문 <밤과 어둠>이 뭔가를 설명하면서 또 감춰주고, 사진을 보고 생각하라는 톤? 지시가 많이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둘의 협업이 어떤 대화로 이루어져서 이 감각을 둥둥 떠다니게 했는지 궁금했어요.
현다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가 글을 쓸까, 아니면 사진을 오래 이야기한 사람에게 부탁할까. 그랬을 때 제일 처음에 생각났던 사람이 지원 씨였어요. 지금 사진에 대해서 나와 같은 세대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제가 지원 씨를 선택하게 된 제일 큰 이유는 ‘에너지’예요.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언어들이 너무나 확실했고요. 지원 씨의 생각, 불만이 제 언어와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여태 <Capping, 2023>에 대한 글들은 ‘노동’이나 ‘여성’에 중점을 맞췄는데, 사진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글은 지원 씨가 써주면 좋겠다 싶었죠.
황지원 제가 왜 그런 에너지와 불만을 가지게 됐는지 설명하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예술을 하나도 몰랐어요. 그러다가 대학에서 카메라에 관심을 가지게 돼서, 입시를 하지 않고 사진학과를 복수 전공했어요. 부랴부랴 제일 싼 캐논 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찍었는데, 다른 학생들은 막 500만 원짜리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거예요. 그 격차를 많이 느꼈어요. 내가 보기엔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 더 잘 찍은 것 같은데 왜 500만 원짜리 카메라가 필요하지? 포토샵은 왜 해야 되지? 왜 예쁘게 찍어야 되지? 대학 다니는 동안 혼자 이런 쓸데없는 불만들을 갖고 있었어요.
나중에 영상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학부 때 풀지 못했던 숙제들은 여전히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사진하는 분들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그러다 대학원 때 텍스트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사진을 명료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안되는 거예요. 그 과정 자체를 다혜 작가님이랑 술이나 커피 마시고 같이 작업 보면서 많이 이야기했었던 것 같아요.
작년 대구 사진 비엔날레에서 다혜 작가님 사진의 에너지를 보고 놀랐거든요.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게 뭐지?’라는 의문이 그때는 지금보다 더 회의적으로 컸을 때였거든요. 근데 다혜 님 사진처럼 찍고 보여줄 수 있구나, 다르게 찍는다는 건 이런 거구나. 은연중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재미있게 봤었어요. 그러면서 사진은 텍스트가 아니라는 것도 점점 깨닫게 되었어요. 그 감각을 어떻게 표출하고 보여주지? 기획자로서는 어떻게 판을 짤 수 있지? 이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다혜 작가님이 연락해 주셨죠. 제가 하고 있는 고민과 다혜 작가님이 보여주고자 하는 게 일치하다 보니까, 그걸 풀어내고 싶은 욕망이 컸어요.
황예지 전시 서문에서 시를 인용한 게 용감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사진을 오래 했지만, 한국에서는 사진 담론이 안 생기잖아요. 답답해서 문학을 공부하려고 덤벼들었거든요. 매년 신춘문예가 열리고 수상자 소감과 심사평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그 시대에 어떤 시들이 나오는지 정리되니까. 예를 들면 ‘코로나 때는 SF 장르처럼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들이 많이 나왔다.’ 이런 한 줄 평 자체도 데이터가 되는 거예요. 근데 반대로 사진을 생각했을 때는 ‘AI 출현’, 끝. 이런 수준으로 내용이 없으니까요. 그게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구나.
그래서 인용구들이 바깥에서 우르르 몰려온 느낌이 좋으면서, 사진 안에서는 이런 텍스트가 왜 안 만들어질까? 그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원 씨가 이런 인용구를 데려올 때 어땠을지 궁금했어요.
황지원 시가 작가님 사진이랑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시는 의도를 모르고 읽더라도 감각적으로 체득할 수 있으니까요. ‘밤’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된 시집이 떠오르더라고요. 김행숙 시인의『이별의 능력』이라는 시집인데, 그 시집에서 「한 사람 3」, 「옆에 대하여 1」, 「신비한 일」을 선택했어요. 그리고 작가님 작업과 이 시들이 잘 맞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봤었어요.
현다혜 같이 3개의 시를 읽어보았는데요. 「한 사람 3」이라는 시에서 이름을 나열하는 구절이 있는데, 그게 <Capping, 2023>에 너무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시에서 정확하게 누군가의 이름을 집어주는 게 필요했어요.
밤과 어둠의 차이를 우리는 정원의 어느 구석에서 알아챘는가.
밤의 정원. 저녁의 정원에도 정혜, 은혜, 미혜 같은 명찰이 붙여진 나무들의 잎사귀,
그림자, 잎사귀, 그림자를 드리우나. 정원의 여자들은 어디로 다 흩어졌나.
한 사람3, 김행숙
코끝을 매는 냄새를 숨기기 위해 씌우는 덮개처럼 나는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모든 것을 어둠 속에 꼭꼭 숨긴다. 굳이 볼 필요 없지. 사는 데도 불구하고 볼 수 없는 시간대란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샛노란 여명은 계속해서 드리운다. 어딘지 모를, 여정을 떠나는 것만 같은 그녀들이 찍혀있다. (…)
황지원, "밤과 어둠",《현다혜 개인전, 밤과 밤》 서문. 2024
황예지 전시를 사진으로 메꾸는 역할, 글로 메꾸는 역할로 함께 만나게 된 거잖아요. 계속해서 의논이 필요한 작업일텐데. 두 분의 합이 좋았나요? 어땠어요?
황지원 즐. 자. 승!
황예지 즐. 자. 승이 뭐예요?
황지원 즐기는 자가 승리한다.
현다혜 즐자승을 구호처럼 외치면서 작업했어요. 즐자승이 왜 나왔냐면요. 어떤 작업을 보고 머리 아프게 글을 쓰기보다는, 글 쓰는 사람도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서요. 어떤 틀이나 형식을 정해놓지 않고 그냥 즐겁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황예지 즐겁게 준비하셨구나.
현다혜 맞아요. 그냥 카페 같은 곳에서 데이트 겸 미팅하기도 했고요. 근데 일단은 불만으로 시작이 되고.
황예지 싫어하는 게 같으면 또 기분 좋죠.
현다혜 글에 대해 정할 때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제가 말을 조리 있게 못 하는 사람인데, 지원 씨는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잘 말하는 사람이에요. 제가 막 뜨문뜨문 얘기해도, 지원 씨가 시를 가지고 온다든지, 아니면 어떤 이야기를 말해 준다든지. 이런 것들이 오가면서 사진에 맞는 글을 계속해서 다듬어 나갔어요.
황지원 제가 계속 고민해 왔던 매체니까 바로바로 파악이 가능했어요. 본질적으로 사진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했으니까요. 이런 생각들이 서로 공감 갔기 때문에 한 번에 캐치가 가능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텍스트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어서, 글 쓰는 것 자체가 엄청 무서워요. 그렇지만 기획자가 할 수 있는 도구 중 글이 큰 비중을 차지하잖아요. 그래서 긴장하고 경직된 상태의 글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가 작년 (구)대사관 저에서 이희단 작가의 스크리닝《질투 질투의 벽》을 협력 기획하였는데요. 처음으로 제가 쓰고 싶은 대로 써봤어요. 글을 이렇게 써도 되나 무서웠는데, 생각보다 그 글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다혜 작가님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작업 자체가 굉장히 자전적이고 솔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진에 대한 고민 자체도 정말 체화된 고민들이라 생각했고요. 저도 그냥 있는 그대로 풀어내 보고 싶다는 합의 하에 썼어요.
황예지 전시 디피 방식도 눈에 띄었던 게, 작가만의 컬러 팔레트가 굉장히 예민하다. 1층 레드, 2층 블루, 3층 옐로우 이런 식의 층별 분리도 있었고, 제가 생각했을 때 1층은 거역하고 싶은 사진을 뿌려주면서 실망시키고, 2층, 3층 올라오게 하면서 확 전환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맞나요?
현다혜 맞아요. 잘 읽으신다.
황예지 거역하고 싶은 사진에 대해서 사람들이 더 궁금해할 것 같아요. 거역하고 싶은 사진을 굳이 찍어서 보여주는 행위가 뭐였을까요? 전시를 본 사람들이 여기에 대한 독해까지 가닿았을지 궁금해요.
현다혜 친절한 설명이 있진 않았기 때문에, 그 독해까지는 가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전시를 보신 분들이 1, 2, 3층 다 <Capping, 2023> 같은 사진들이 오면 어땠을까 아쉬움을 많이 얘기해 주셨어요. 근데 저에게는 전시장에 있는 사진들이 모두 <Capping, 2023>이었어요.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론적으로 전시장의 뿌리인 1층에는 <Capping, 2023>이 되지 못했던 이미지들이 와야 한다, 그 사진들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 그것들도 당연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황예지 저는 여성 사진가는 계속해서 치이는 위치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진이 현대 미술 안에서 자생하고 있는지 질문해보자면, 애매하잖아요. 최근에 좋게 본 사진전 있어요? 했을 때 할 수 있는 대답과. 사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렇게 할 수 있는 질문도 하기 어려운, 자격지심의 매체인 것 같은데요. 그래도 두 분은 사진을 꼭 붙들고 있잖아요. 어떤 마음으로 붙들고 있는 걸까요?
현다혜 붙들고 싶어서 붙드는 게 아니라…. 안 놓아지는 거예요.
황예지 이 악력 뭐야? 왜 이렇게까지 안 놓아지는 거야?
황지원 저는 사진으로 이미지를 시작해서요. 세상을 바라볼 때 사진이라는 매체로 필터링해서 보게 되더라고요. 사진을 부정하고 싶어도, 계속해서 본질적으로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고, 사진에 대한 고민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붙들고 있는 것 같아요.

현다혜 사진이 재밌어요. 이미지를 쫓아가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이건 사진만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계속해서 쫓아가고 실패하고 마주하는 과정은 사진만 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미술의 언어로 사진을 이야기해야만 할 것 같아서 작업을 꽤 오랫동안 하지 못했거든요. 세월호 추념전 전시가 끝나고, 이제 미술 안에서 사진을 읽는 방식으로만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이야기할지 몰라서 회피하던 시간을 지나고… 작년에 워크숍에서 동료 작가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많이 깨닫게 됐어요. 작업에 무거운 단어를 덧대고 덧대려 해서 시작하지 못했던 거였구나.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사진은 그냥 카메라 들고 나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행위 자체조차 생각이 많아질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고, 카메라만 들고 나갈 때도 있고. 그런 모습도 다 저이기 때문에.
황지원 저는 생각이 항상 많았던 사람이어서, 앞으로도 계속 생각이 많아지기만 할 줄 알았어요. 근데 지금은 생각을 크게 안 하는 시기를 처음으로 맛보고 있어요. 그냥 받아들이고 비우고 감각을 따라가면서 나아가도 되는구나. 이렇게 바뀔 수도 있다는 게 재밌어요.
황예지 딱 이런 느낌의 태도가 사진 관람할 때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황지원, 현다혜 왜 그럴까요?
황예지 사진에는 침묵이 필요해요. 사진 찍을 때도, 관람할 때도 일정량의 침묵이 조성되어야 그때부터 다른 지평이 보이는 것 같아요. 먼저 사진이 시작된 국가에서는 그 기능 자체를 이미 다 이해하고 완수한 게 느껴지거든요. 충분히 사진에 순응했다가 빠져나와서 쓴 비평이 많아요. 저는 그런 비평을 원하는 것 같아요. 사실 한국의 사진 비평은 그렇게 감각 기관까지 열면서 쓰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미술 비평하시는 분이 잠깐 사진 비평을 쓴 것보다도, 사진 안에서 활약하는 사진다운 글이 되게 보고 싶다. 그렇게 제때제때 언어와 기록들이 필요하지 않나. 근데 왜 이상하리만큼 사진 미술관이 생기는데도 희망적이지 않은지가… 아무런 희망도 생기지 않는 게 제일 난처한 것 같아요. 과연 다른 독해가 생길까? 그런 독해 연습을 같이할 수 있을까? 사진 프로그램에서도 그냥 우수한 걸 더 우수하게 했다는 정도밖에 안 느껴져서. 사진의 딜레마인 것 같아요. 언어가 생기지 않고 수렁에 빠지는 것이.
현다혜 그럼에도 사진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잖아요.
황예지 아무도 따라가지 못하고.
현다혜 이 미친 속도감을.
황지원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죠.
현다혜 사진은 많은데 사진으로 말하는 사람은 너무 없고.
황예지 아카이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진을 막상 찾기도 어렵고. 제가 사진 배울 때는 현 사진계를 체크할 수 있는 이벤트들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예를 들면 서울 사진 축제, 루나 포토 페스티벌처럼 유의미한 스크랩과 아카이브를 보여주는 행위들이 지속되었으니까요. 그것 자체도 권위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야기가 흐른다, 사진이 흐른다고 느껴졌는데…. 지금은 모든 이미지가 박제된 느낌. 죽어 있다, 플로우 없이 다 따로 논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이어보면 좋을까.
황지원 요즘은 유의미하거나 재밌는 사진전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사진 축제도 안 하고요. 사진 미술관 때문에 안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장이 없어지니까 언어의 소멸이 더 심해지는 거구나. 사라져 버린 지금에서야 더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황예지 버블 경제랑 비슷했던 같아요. 서울 사진 축제, 루나 포토페스티벌,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 그때 사진이 진짜 미쳤었거든요. 사진 열풍. 대안 공간부터 시작해서 필름 카메라, 아날로그. 모두가 사진을 찍게 됐는데... 그때부터 사진 매체가 예술보다는 일상이 되어버리고, 그렇게 한 번 뒤바뀌었던 게 오히려 어떤 권위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했고. 그 시기부터 오히려 사진 예술을 진지하게 시작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가 조직됐던 것 같아요. 그 황금기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봐요.
현다혜 진짜 그때는 황금기였죠.
황지원 사진은 참 이상한 매체예요. 계속 말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근데 너무 없고. 사진들은 너무나 많은데.
황예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 걸즈, 우리 어떻게 해야 하나요?
황지원 근데 뭐 계속 사진을 찍으신다면….
황예지 다혜 님은 계속 사진을 찍고, 지원 님은 사진에 대한 글을 계속 쓰고, 저는 이런 이야기를 수집하고?
황지원 이걸 10년 동안 주기적으로 모여서 하면 지금보다는 뭔가 생기지 않을까요?
현다혜 예지 님이 더미덤피이미지를 시작하면서 사진에서 기대하는 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여태까지 해오면서 어떤 수확이 있었나요?
황예지 어떤 예술이든 다 역사로 기술되는 것 같은데요. 확실히 과거를 현재로 이송하는 사람들이 작업의 힘이 좋은 것 같아요. 마냥 현재에 집중하기보다는, 과거의 어떤 작가와 작품이 나를 길어 올렸고, 그로써 이 작업을 한다는 체계가 있는 사람들이 더 단단하게 작업하는 것 같아요. 저는 원고가 수백 개 모였을 때 어떻게 될지가 궁금하거든요. 어쨌든 사진에 담론이 없으니 억지로라도 담론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매거진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쌓이면 좋은 무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우선은 아카이브로써 최대한 가지고 가보자.
황지원 부재 시대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계신 거 같아요. 제가 사진으로 예술계에 들어가다 보니까 미술사 자체를 잘 몰랐어요. 그 역사를 모르고 동시대의 짧은 몇년 동안의 흐름에서 생성되는 근시안적인 문제들을 이해하고 납득하는게 힘겨웠어요. 지금은 미술사를 1년 정도 공부하고 있는데요. 동시대 젊은 작가님들의 작업을 볼때 더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무기들이 점점 생기더라고요. 내가 태어나지 않은, 내가 경험하지 않은 흐름 안에서의 역사를 살펴보고 내가 그 흐름 안에서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도 중요하구나. ‘역사’라고만 하면은 되게 진부하잖아요. 그래서서 굉장히 무시했었는데, 정말 중요하다는 걸 많이 깨달았어요.
황예지 뭐든지 해석의 열쇠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근데 사진의 열쇠가 좀 허술하죠. 어쨌든 제 1세계의 문화들이 제 2 세계로 오고, 제 3세계로 오고, 후발대로 달리는 예술이기는 하니까요.
황지원 요즘엔 더 넓게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살아있는 동안 그 열쇠가 단단해지는 걸 목격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내 세대에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였어요. 아예 그거 못 보고 죽을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 생각하다 보니까, 해결된 나의 4-50대를 휘황찬란하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요. 사회가 이 문화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기까지 100년이 걸릴 수도 있겠구나.
현다혜 보고 죽어야 되는데 못 보고 죽을 수도 있구나.
황예지 볼 수 있을까, 사진 예술의 흥?
앞으로 두 분은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현다혜 계획. 저는 <Capping, 2023> 작업을 책으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최근에 주용성 사진가가 했던 말인데, 일본이나 다른 나라는 한 작업으로 여러 사진집을 만든대요.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한 작업을 하나의 사진집으로만 만드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크게 공감했어요. 사진 책이 진짜 없구나. 그래서 <Capping, 2023>을 전시하면서 더 책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책을 만들고 다음 작업을 하면서 지낼 것 같아요.
황예지 지원 님은요?
황지원 진득하고 싶어요. 본질적인 질문 하나를 남기는 콘텐츠에 욕심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허둥지둥하는 게 컸어요. 이것저것 다 보여주는 데 급급해서 중요한 질문을 놓친 게 너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허둥지둥하지 말고 하나를 제대로 하자.
그리고 사진에 대해 잘 모르고 욕하고 있는 것 같아서 스스로 반성도 많이 했어요. 어떤 사진을 딱 1초 만에 싫다고 판단하고 말하고 다녔었던 거예요. 왜 싫은지 문장으로 말하려고 했을 때 그럴 수가 없어서, 스스로를 호되게 혼냈던 적이 있어요. 한계를 받아들여야 확장할 수 있는 거니까. 더 구체적으로 알아가고 싶어요. 할 게 많다. 전시도 하고, 프로그램도 해야 하고, 회사도 다녀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토요일에 집회도 나가야 하고, 퇴진도 해야 하고. 주말에 할 일들이 이만큼 있는데 그걸 평일 저녁에 다 하고 있으니까 피곤하죠.
황예지 나라가 이런 데 뭐 사진 판이 잘 돌아가나. 다 욕심이죠.
현다혜 근데 신기했어요. 나가면 항상 사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황예지 이상하게 사진은 회귀의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자꾸 사진을 하고, 계속 쥐고 있고.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작용과…. 어쨌든 계엄령의 모든 상황과 플로우 자체가 이미지로 흐르잖아요. 광장에 모이게 하는 힘, 광장에서 동료를 발견하게 하는 힘. 이 모든 것들이 사진의 회귀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면서 그 시절이 다시 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현다혜 예전에 사진가 동료들이랑 홍콩 시위에 갔었거든요. 그때는 사진으로 뭔가 해볼 수 있지 않겠냐고 진짜 호기롭게 갔죠. 그랬다가 사진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오히려 너무 회의감이 커졌었고. 그랬는데 이번에 계엄령 때 또 다시 국회 앞에서 사진가 동료들을 만나고…. 그런 모습이 여러 가지로 복잡하게 느껴졌어요.
황예지 영원토록 이럴 것 같아요. 진짜로 영원토록 영원토록 이러겠구나. 어차피 영원일 거면 잘 알아가야겠다 싶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려요.
현다혜 개인전이 끝나고 보는 사람들의 감상뿐만 아니라 저의 감상도 기록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어요. 같이 글을 써준 지원 씨도 너무 고맙고, 앞으로 재밌는 걸 모색해 보기로 했으니 같이 잘 해봤으면 좋겠어요.
황지원 작가님이 저를 선택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리고 제가 겪고 있는 생각의 전환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도 그런 전환을 겪고 있다면, 그것들이 또 공유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다들 사진하시면서 겪어왔고 공감하실 법한 과정들이니까요.
황예지 그럼 토요일 광장에서 뵐게요.
황지원, 현다혜 네.
작가 소개
현다혜
파편처럼 깔린 형체 없는 이미지에 초점을 맞춘다.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장면들을 그럼에도 볼 수 있다 믿으며 사진으로 따라간다.
황예지
199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수집과 기록을 좋아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그들의 습관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진을 시작했다. 사진과 에세이,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을 다루며 개인적인 서사를 수집하고 있다. 개인의 감정과 관계, 신체를 통과해 사회를 바라보고자 한다.
황지원
영상문화학을 전공했다. 현실/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탐구하며, 실재가 무엇인지 쫓는다. 이를 위해 세상을 재현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매개하는 매체를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