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여자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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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18

 

 

토요일의 여자들 (하)

Editorial : 황예지, 여자에게, 여자가

 

역사는 몽타주입니다. 

역사는 연결하기입니다.

 

코닥의 마케터로 오랜 시간 일한 내 친구는 필름과 일회용 카메라를 보내곤 한다. 나는 그를 만나본 적 없으며 적극적으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 또한 들지 않는다. 적당히 소원한, 그러나 연결 되어있는 관계에 유독 안심하고 있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의 집 냉장고에는 내 얼굴 사진이 프린트되어 버젓이 붙여져 있다. 그가 보낸 일회용 필름 카메라의 존재는 퍽 난처했다. ‘하찮다’라는 단어에 가까웠을까. 손에 맞는 카메라가 고장 났을 때, 위급할 때만 이 카메라의 존재를 겨우 떠올리게 되었다.

2024년 12월 3일.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하며 밥을 먹고 있었는데 앞에 앉은 이가 오묘한 표정으로 계엄령이 떨어졌다고 말해주었다. 일을 하다가 잠시 끼니를 해결하는 듯이 보였던 옆자리 아저씨도 뉴스를 봤냐고 물어왔다. 핸드폰이 꺼져서 자세한 내막을 확인할 수 없었으나, 계엄, 계엄, 계엄… 그 단어를 들으며 입안에 밥알을 굴리는 게 어색해졌다. 심야의 식당은 시끄러웠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벌건 얼굴로 소음을 성실하게 만들고 있었다. 저 소음이 멎어 드는 게,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 사이사이로 피가 물드는 게 계엄인 게 아닐지. 귓가에 소음과 무음이 번갈아 오갔다.

계엄이 우습지 않아진 건 광주에서 한 여자를 만난 후부터였다. 동료와 리서치를 위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들려줄 수 있는 이들을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지만, 한 여자의 이야기만이 내게 다른 장면을 제시해 왔다. 허리가 살짝 굽은 그녀는 꽃이 피어난 옷을 입고 한산한 길가에 나타났다.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우리를 기특해하면서도 경계심을 쉽게 허물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자기가 겪은 일에 대해 이야기를 차분하게 하는데, 죽은 이들을 언급할 때면 먼 곳으로 홀연히 떠나는 것 같았다. 차마 가닿을 수 없는 곳, 그리운 곳으로.

 

남자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거울 앞에서 욕지기를 연습하고 미간을 찌푸리던 여자. 섬유 사업장에 며칠씩 숨어들어 전남 지역의 노동조합을 조직을 돕던 여자였다.1 ‘내가 한국노총 상급단체에서 근무했다고 그랬잖아. 거기에 나 혼자였어. 여자가. 거의 다 남자였어.’ 광주에서 노조를 조직하고 계엄을 겪은 시기, 그녀의 나이는 스물아홉이었다. 1980년 5월 18일. 그녀가 YWCA2에서 노조 교육을 강행하는 와중에 공수부대가 나타났다. 계림동, 동명동, 광주의 거리를 헤매다가 그녀는 도청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시체 처리와 접수를 맡았다. 차게 식은 살갗들. 피로 물든 교련복. 파란색 비닐. 도청의 시간이 두려웠으나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했다.

민주화 운동이 끝나고 더 많이 앓았다고. 매해 오월이 되면 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부스럼과 피멍이 올라온다고 했다. 그녀는 민주화 운동에서 주되게 기억되는 건 남성, 학력을 가진 이들의 언어이니 여성과 노동, 계급에 관해 공부한 뒤에 다시 보자고 강건한 작별 인사를 건네고 떠났다. 나는 그녀를 다시 보러 가지 않았다. 그 의제에 대하여 또렷하게 눈을 떴다고 느껴지는 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 이송한 장면은 몸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계엄이 떨어진 날, 카메라를 챙겨 국회로 나가는 게 어렵지 않았다.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들로 뭘 할 수 있을까? 아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진으로. 내가 찍은 사진으로 무엇도 낙관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 이제 그만할까요. 아니면 다시 할까요. 아직은 그만할 수 없는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의 도구인 연장을 내려놓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00일째가 되던 날. 문화예술인 행동선언 연장전에서 사진가들이 카메라를 내려놓는 퍼포먼스를 했다. 그리고 다시 카메라를 고쳐 매고 각자 2014년 4월 16일로 떠났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란 걸 알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란 무망의 상태가, 모든 걸 무릅쓰고3 시도하는 게 그 어떤 희망이나 절망보다도 강인한 게 아닐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으로 할 수 있는 것들.

 

 

「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추모! 온전한 수습과

피해자 권리 보장!

생명존중 안전사회 시민대회

 

일시: 2025년 1월 4일 (토) 오후 2시

장소: 윤석열 즉각 파면 퇴진, 사회 대개혁 5차 시민대행진 대회장

(경북궁역 4 번출구)

재난참사피해자연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참사,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2.18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가습기살균제 참사, 7.18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 4.16 세월호 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6.9 광주학동참사)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오송참사 유가족 협의회, 오송참사 생존자 협의회, 아리셀 산재피해가족 협의회, 생명안전동행, 생명안전 시민넷, 4.16연대,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

 

이 나열을 보고 아득해졌다. 뺨을 세게 맞은 듯했고 연결이란 단어를 다시 배우고 익힐 수 있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가족은 4·16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돕고, 4·16 세월호 참사 유가족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돕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은 12·29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을 돕는다. 상실됨과 온전치 않음으로 땅을 밟고, 부유하고, 공명한다. 서로의 존재를 끌어안는다. 새어나가지 않도록. 사진 (단일의 사건)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지만, 사진과 사진, 사진과 사진과 사진... 연결은 어떤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겐 연약하고 허술한 사진(발화)이 필요하다. 잘 부서지고 손끝에 전기가 오르는, 하찮음이 어쩌면 일회용 필름 카메라 (몸)의 역량은 아닐까. 사진을 모으는 건 나의 오래된 연장이다.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윤석열 탄핵 집회에 참여하는 여자들4에게 제공했다. 이 사진들을 연결해 보기로 한다.

 

 

1 민주화기념사업회 한국여성운동구술기록 3차년도 사업 기록에서는 그녀가 ‘전남 지역의 노동조합의 산파 역할’을 했다고 적혀있다.

2 광주여자기독교청년회.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YWCA 대의동회관에서 현수막, 대자보 제작, 모금, 취사 등의 활동을 펼쳤다.  

3 ‘완전하게’ 이야기하기가 불가능한 것을 ‘모든 것을 무릅쓰고’ 이야기하기. -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 

4 여자들에 부쳐. ‘정치적으로 나타나기, 이 민중들의 나타나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나 아렌트는 얼굴, 다양성, 차이, 간극 등 네 개의 패러다임을 환기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얼굴. 민중들은 추상이 아니다. 그들은 말하고 행동하는 몸으로 만들어진다. 그들은 자신의 얼굴을 제시하고 노출한다. 다양성. 물론 이 모든 것은 그 어떤 개념도 그것을 종합할 수는 없는 유일성-유일한 운동, 유일한 욕망, 유일한 발화, 유일한 행위-으로 이루어진 무한한 군중을 만든다.’ -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민중들의 이미지』 

 


네 번째 카메라, 김미카

 

 

 

 

 

 

쟤가 지뢰지 내가 지뢰냐

 

 

다섯 번째 카메라, 연혜원

 

 

 

 

 

 

 

 

 

12월 14일 여의도 집회에서 내가 머문 곳은 여의도공원문화의마당에서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이 형성한 ‘무지개존’이었다. 무지개존은 퀴어들이 집중적으로 한곳에 모임으로써 광장 안 퀴어의 존재를 더 가시화하고, 집회에서 퀴어에게 안전한 장소를 만들어보자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내가 그날 무지개존을 찾은 이유는 집회에 혼자 갔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만큼 얼굴을 아는 이들이 있는 곳에 있으면 덜 외로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12월 14일은 국회에서 지난주에 부결된 탄핵안에 대한 재표결이 있었던 날이고, 많은 이들이 가결을 기대한 만큼 정말 많은 사람들이 국회 앞에 모였다. 그만큼 이날의 집회는 나에게 가장 힘든 집회로 기억되고 있다. 집회 내내 박근혜 퇴진 이후 민주당이 집권 시기 내내 다양한 소수자들에게 보여준 냉대에 대한 트라우마가 몰려왔다. 무지개존에 앉아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나는 무지개존을 둘러싸고 우뚝 서 있는 무지개 깃발들 사이에서도 속절없이 외로움을 느꼈다. 나에게 유일하게 희미하게나마 웃음을 준 것은 어디를 돌아다니다 여기까지 온 것인지 모를 스피커에 붙은 호스트바 광고뿐이었다. 무지개존에서도 사람들은 자유발언을 이어 나갔고, 그날 주최측에서 준비한 무지개 플랜카드는 무지개존 밖의 시민들에게도 불티나게 배포되었다. 나는 추위 속에서 어떤 희망을 회피하고 싶은 것처럼 자꾸만 잠이 왔다. 기대하지 않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기대하고 싶은 마음 사이를 사람들이 오고 갔다. 탄핵안이 가결되고, 집에 돌아가기 직전에 무지개존에서 우연히 동네 주민을 만났다. 서로를 만나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여의도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탄핵안이 가결되고 국회의원들이 무대에 올라와서 마치 본인들이 승리한 듯이 마이크를 잡는 것이 그렇게 꼴 보기가 싫었다. 우리는 인파에 쓸려 두 시간이나 걸려서 은평구로 돌아갔다. 아주 쓴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연혜원

고양이 하쿠랑 함께 살고 있다. 투명가방끈 활동가이자 사회학 연구자이다. 퀴어를 중심으로 기획하고 글을 쓰며 살아간다. 『퀴어돌로지』(2021)와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2023)를 함께 쓰고, 희곡 『가장자리를 위한 복수 노트』(2024)를 썼다. 퀴어예술매거진 《them》을 발행하고 있다. 

 

 

여섯 번째 카메라, 심미섭, 윤이람, 이수연

 

 

 

 

 

 

 

 

 

 

 

 

 

 

2016년 페미당당은 dj doc가 여성혐오 가사를 담은 신곡을 촛불집회에서 부르지 못하게 보이콧하여 온 국민의 해일같은 비난을 받았다. 8년이 지나고 페미당당은 이랑의 초대로 무대 위에서 깃발을 흔들고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로 “늑대가 나타났다”를 외쳤다. - 미섭

광장에서는 불안 장애 때문에 신경안정제를 주머니에 넣어갔는데 필요가 없어서 신기했다. 처음 본 사람들과 단체활동 하는 것이 처음으로 두렵지 않았다. - 이람

여성들은 투쟁의 현장에서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 속에서도 웃음과 즐거움을 잃지 않았다. 투쟁과 일상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포착하며, 나는 그들의 강인함과 따뜻함에 다시 한번 감동 여자들 짱! - 수연

 

심미섭
페미당당 활동가, 작가. 곧 첫 단독 저서를 출간한다. 

윤이람
8년 간 인화 못한 일회용 카메라가 8개 있다. 10개가 되면 할 예정.

이수연

여자들에게 먹을것과 마실것을 제공하는 일을 함.

 

 

일곱 번째 카메라, 전다정

 

 

 

 

 

 

 

 

나의 세계에는 만 3세와 이제 막 6개월에 접어든 영유아가 있다. 그 뒤에 내가 있고, 나의 뒤에 남편이라는 사람이 있다. 아이를 갖기 전 내가 일구었던 모음이며 자음 같은 것들은 이제는 채도가 빠져 잘 읽히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빨갛거나 파래지는 순간이 있다면, 나 스스로 부당하다고 반문을 품어 둥둥 떠다니는 물음표와 느낌표를 불러세워 차례대로 이의를 곱씹는 순간들이겠다. 대체로 내가 쓰는 젠더에 대한 사회적인 규범과 귀신같이 따라오는 기대에 맞물리는 지점들인데, 음성에서 비롯되는 가장 최근의 논조는 “애가 우는데” 였다. 애가 우는데 엄마가 어딜, 애가 우는데 엄마가 무얼, 태어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나의 핏덩이가 엄마와 살이 분리되었다는 이유로 목이 쉬게 울어 젖힐 때면, 그 광경을 본 가깝거나 먼 가족들이 하는 말은 하나같이 “애가 우는데 엄마가” 떨어지지 말고 잘 안아 달래라는 거였다. 이제는 8킬로에 육박하는 나의 핏덩이가 어깨에 메는 포대기인 ‘아기띠’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어깨에서 시작해 비로소 전신과 합체하여 엄마라는 사람의 용변도 함께 해결하려 든다. 이맘때 아이들에게는 영속성이라는 개념이 없다는데. 눈에 보이지 않으면 영 계속될 리 없는 엄마의 눈빛이 일 초도 안 되어 못 버티게 그리운 걸까. 그래서 나는 이 핏덩이를 매달고라도 집회에 나가고 싶었다. 태어나 들려준 적 없는 고함이 난무하는 그 현장에, 태어나 맞아본 적 없는 칼바람 속에도, 굳세게 숨겨 안고 있을 걱정만 한 것이다. 체온계를 다시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첫째 등하원길 매일 매일이 ‘진짜 겨울’이 되는 추위 갱신에, 특별히 더 매서울 바람의 여의도가 송출되는 화면을 끝도 없이 바라보았다. 제법 문장 구사가 원만해진 첫째는 며칠간 꺼지지 않는 뉴스를 가리키며 “무슨 아저씨야?” 하고 묻는다. 만 3세에게 어떤 대답이 적합할지 몰라 더듬더듬 말을 찾고 있는데, 대한민국이라는 말 하나에 홍채까지 끌어모아 반짝거리며 박수 다섯 번을 반복하여 치는 것이다.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내 딸이 아는 대한민국은 이런 것이리라. 아이의 턱 밑까지 뒤덮인 콧물을 닦아내며 내 처지에 시위는 무슨 시위냐며 또 한 번 고꾸라진 마음이 파랗거나 빨개진다. 살라며 어깻죽지를 잡아끌어다가 수덕사 등반길을 자초했던 엄마에겐 떨어져서 해방되고 싶다는 말이나 나불댔었는데 그 밑에 팔던 다래 순, 부지깽이, 햇고사리 같은 내 새끼 손뼉이 맞장구쳐지는 날이 오니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 가정을 지키느라 딱딱해지기도 한다. 작금의 참극들을 증상처럼 앓기만 하다가 은박 무덤을 밟고서게 될까 두렵고 애통한 마음으로 쓴다. 목도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내 아이들을 지키는 일 일테니까. 내 아이들을 지키는 일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될 테니까. 그러므로 내 나라를 지키는 눈이, 홍채가 되려 한다. 시리게 얼어버린 은박담요가 내 아이들의 새벽일지 모르니. 어린이병원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자장가가 되어버린 국회방송을 재생하며…, 박수 다섯 번이 따라붙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국회로 뛰쳐나간 이들에게 진 빚으로 이 일기의 끝을 맺는다.

 

전다정

정원과 공원의 엄마. 아이들과 엄마를 위한 옷을 만들고 있다.

 


 

 

2024년 12월 21일. 일을 하다 말고 남태령으로 향했다. 트랙터를 끌고 상경한 전봉준 투쟁단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트랙터의 깨진 유리창. 경찰벽이 열리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그곳으로 갔다. 수도방위사령부 건물 옆에 시위대가 투쟁하고 있었다. 그 건물은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고 시위대는 추운 날씨에 잠들지 않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밤하늘 사이사이로 폭력의 기시감과 저항하는 눈망울이 아른아른 피어났다. 도무지 끝나지 않는 역사. 영원의 형체를 보는 것 같아 코끝이 시큰거렸다. 사실 그 장면이 좀 아름다웠다. 눈에 넣고 또 넣고 싶어서 졸음이 올 틈이 없었다. 한 여자는 내게 방석을 주었고, 한 여자는 내게 동지 팥죽을 주었고, 한 여자는 핫팩을 주었고, 한 여자는 내가 쥐고 있던 쓰레기를 가져갔고, 한 여자는 따듯한 물을 마시라고 전해주었다. …여자에게, 여자가. 동이 트고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남태령으로 몰려왔다. 경찰벽은 열렸다.

광주에서 만난 여자가 그런 말을 했다. 왔다 갔다 하는 게 자전거와 오토바이, 리어카 뿐이었고, 아주머니들이 음식을 머리에 이고 계속 도청으로 날랐다고. 총을 쏘고 목숨이 위태로운 난리통에서 자유와 평화를 느꼈고, 우리가 바라던 대동세상이 온 게 아니던가 했다고. 자유를 느끼는 건,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과 울타리 바깥에 있는 사람의 차이라고 말이다. 나 역시 국회에서, 남태령에서, 한남동에서 어렴풋이 자유를 느꼈다. 주위를 둘러본다. 색색의 응원봉, 다채로운 분노와 저항이 있다. 이 광장의 모습을 그녀에게 전하고 싶다. ‘혼자가 아니었어요’ 1980년 5월 18일여자에게, 2024년 12월 3일 여자가. 

 

이 사진들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추신: 최승자는 나에게 편지를 써준 적 없지만, 내 세상은 그녀의 편지를 받았다. 

 

'인간답게' 라는 가치 기준이, 진리가 자꾸 모호해져간다. 그래서 때로 한 10년쯤 누워 있고만 싶어질 때가 있다. 모든 생각도 보류하고 쉽게 꿈꾸는 죄도 벗어버리고 깊이깊이 한 시대를 잠들었으면. 그러나 언젠가 깨어나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의 황량함. 아아 너무 늦게야 깨어났구나 하는 막심한 후회감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결국 그 거대한 타의의 보이지 않는 폭력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인간답게 죽어질 수 있기 위해서는 대항해서 싸우는 필사의 길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밤에도 나는 이를 갈며 일어나 앉는다. 끝없이 던져지고 밀쳐지면서 다시 떠나야 하는 역마살의 청춘 속에서. 모든 것이 억울하고 헛되다는 생각의 끝에서, 내가 깨닫는 이 쓸쓸함의 고질적인 힘으로, 허무의 가장 독한 힘으로 일어나 앉는다.

잠들지 않고 싸울 것을, 이 한 시대의 배후에서 내리는 비의 폭력에 대항할 것을, 결심하고 또 결심한다. 독보다 빠르게 독보다 빛나게 싸울 것을. 내가 꿀 수 있는 마지막 하나의 꿈이라도 남을 때까지. 

–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중에서

 

카메라를 들어준 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강모래, 김미카, 박규현, 심미섭, 이수연, 윤이람, 연혜원, 익명의 샤이니 팬, 전다정

 

 

Editorial by 

황예지

199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수집과 기록을 좋아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그들의 습관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진을 시작했다. 사진과 에세이,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을 다루며 개인적인 서사를 수집하고 있다. 개인의 감정과 관계, 신체를 통과해 사회를 바라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