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ng Link>는 아버지와 나눈 "이미 사라진 것들을 어떻게 다시 기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밤섬에 대한 기억과 정보를 5년 동안 추적하면서, 작가가 체득한 '현재를 찍을수록 과거와 멀어진다'는 감각은 무엇일까? 김상하가 밤섬을 집요하게 추적했던 것처럼 DUMMYDUMPYIMAGE에서는 그녀를 집요하게 추적하고자 시도했다.

안녕하세요. <Missing Link> 작업의 출발과 진행, 작업을 일단락한 현재까지의 과정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첫 시작은 아버지와 나눈 사소한 대화에서 출발했어요. 당시 재학중이던 미대에서 대형 카메라를 다루고 있었고, 그렇게 대형 카메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밤섬은 고정되어 있는 형태가 아닌 움직이는 형태라고 생각했어요. 우선은 섬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아 가야겠다고 결심했죠. 맨 처음에는 뉴스 인터뷰에 등장했던 한 분과 연락이 닿았어요. 정말 어렸을 때 밤섬에 살았다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밤섬을 나와 섬이 보이는 반대편인 마포역 쪽에서 가게를 운영했던 분이에요. 그 분을 찾아뵙게 된 이후로 다른 분들과 연결 연결 되어 총 다섯 분을 만났어요. 포트레이트만 찍는다고 이야기가 되는 걸까? 라는 의구심을 지니면서 작업을 해왔습니다. <Missing Link>는 제가 지나온 시간을 포괄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 결과물이 꼭 사진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5년의 시간은 <Missing Link>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단위예요. 이건 함께 보낸 시간 그 자체이기도 해요.
<Missing Link>가 저의 첫 작업이기도 하고, 5년은 충분히 긴 시간이었기 때문에 마무리 하는 과정에서 좀 더 결단을 내리기 힘들었어요. 사진작업이 정확히 어느 시점에 마무리되어야 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이 작업을 열린 형태로 두어야겠다는 결심이 선 데에는 처음 알게 되었던 다섯 분 중 두 분이 돌아가시게 되면서예요. 어느 순간에는 내가 기록조차 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겠다는 예감. 그러니까 내가 매일매일 할 수 있는 관계 맺기를 하는 일이 사진 한 장을 남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어요. 이 판단은 여전히 유효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5년은 정말 짧지 않은 시간이에요. 5년을 반추해 보았을 때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일화가 있을까요?
첫 작업이다 보니 어떤 미숙함이 따라왔고, 그래서 조급함이 늘 있었어요. 내 나잇대는 그 분들이 경험해온 것, 할 수 있는 것들과 분명한 차이가 존재할텐데 어떻게 그 기억들을 나에게 이식할 수 있을까. 이 조급한 감정이 작업을 할 때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어요. 할아버지가 반추하신 장소가 완전히 산 한 가운데일 때도 있고, 지금은 아예 물에 잠긴 상태일 때도 있어요. 이런 불확실성과 함께 한다는 것이 재미있으면서도 어려운 지점이에요. 스스로 이 물살에 내던져지고 함께 떠다니는 방법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죠.
<GATHER>영상에 출연한 두 분은 부부예요. 원래 할머니는 밤섬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버지가 아프게 되시고 급하게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싶어 하셔서 결혼을 하게 됐고 배를 타고 섬에 들어왔다고 하세요. 밤섬 분들에게는 배를 탔던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분은 밤섬이 폭파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아예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시기도 하지만, 밤섬에서 목수였던 할아버지는 밤섬을 나와서도 산 위에서 계속 배를 만들려고 하셨대요. 사실 지금도 한강 위에는 유람선 말고는 배가 거의 없는데, 계속 목수 일을 하셨다는 사실이 엄청 흥미로웠어요. 그 분들의 옛날 사진을 보면 섬이 암석으로 되어있는데, 그 돌과 손잡고 나란히 서 있는 세 명의 여자 사진도 본 적이 있어요. 이런 사진들이 기억에 남아요.

섬 자체가 많이 뉴스화 되었기도 하고, 그 분들은 이미 많은 인터뷰 경험을 가지고 계세요. 한 5년 전 쯤에 사람들이 막 왔다 갔다 하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가져갔었다, 이런 일을 대체 왜 하는 거냐고 많이들 물어보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니 내가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끄집어 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가서 그분들과 함께 있는 게 무언가를 느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그 때 이미 사람들이 왔다 갔는데, 너는 이제 와서 뭐 하냐 그런 질문에 대한 제 나름의 답변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듣다보니 점점 더 흥미로워요. 밤섬에 살았던 분들은 그 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는지 작가님께 말씀 나누어주신 적이 있나요?
이런 걸 기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다 소용 없다 같은 말씀도 많이 하셨어요. <GATHER>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 밤섬에 관련된 기록들을 다 불태워 버릴 거라는 말씀까지 하셨어요. 그 장면을 보고 공감을 해준 관객이 있기에 이 이야기가 더 특별해요. 제 나잇대의 관객들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연로하신 편이에요. 어떤 관객분이 <GATHER>를 보고 그 분의 할머니가 가진 사진들을 다 불태운 경험을 얘기해 주셨어요. 온 가족이 모두 충격에 빠졌죠. 그 분은 여전히 그 행위를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불태운다는 행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쭤보셨어요. 저는 기억 자체가 이 기록이 끝났을 때 유효성이 끝나는 걸까? 그 기억이 다른 형태로 남아서 나에게 또 다른 기억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의문들을 가지고 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전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사실은 섬에 대한 기록을 충실하게 해오신 분들이에요. 어떤 할아버지께선 섬에 대한 기억을 잊기 싫어서 섬에 몇 가지 나무가 있었는지, 몇 명이 살고 있었는지, 어떤 농사를 했는지 같은 사사로운 정보들까지 전부 종이에 기록해 두셨어요. 이 얼마남지 않은 기억의 부스러기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말씀해주신 긴 시간을 보내면서, 밤섬과 접속되는 경험을 하셨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요. 상하님이 밤섬과 접속되는 경험은 어땠나요?
역사적인 굴곡이나 그 장소와 거기에 살았던 사람들이 경험했던 아픔으로 작업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밤섬 바깥에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놓지 않았어요. 서강대교 위에서 밤섬을 찍었을 때에 그 공간이 독특하게 다가왔던 것은, 그곳이 제가 밤섬을 관람할 수 있는 유일한 위치이자 나와의 거리감을 가늠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대형 카메라를 들고 사다리를 놓아 대교 위로 올라야 해요. 그 곳은 밤섬과 같은 선상의 다리이고, 섬과 가까워지는 듯 싶지만 실제로 밤섬까지 진입할 수 없는 뷰포인트예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기억을 계속 청취해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처럼 밤섬과 저 사이의 거리감도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죠. 이 거리감 자체가 단절과 동의어는 아니에요. “접속”보다는 “일정한 거리감”을 잘 이해하고 제가 사는 시간과 그들이 살았던 시간을 분리하는 것 자체가 필요한 경험이었어요.

“접속”이 아닌 “일정한 거리감”이라고 말씀하시는 점이 흥미로워요. 저희의 대화 속에서 계속 “기억”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하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작가님이 가진 “기억”의 의미가 궁금해지네요.
제가 중학생 때 친할머니가 먼 곳에 가셨다가 치매에 걸려 돌아오신 일이 있는데, 제게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그 때의 저는 매일같이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치매는 플라시보다. 치매는 극복할 수 있는 거다. 마음에 따라, 생각에 따라, 기억이라는 것이 변화할 수도 있고, 떠오를 수도 있고 그런 거다.”라고 말하면서 플라시보 효과를 계속 설명했어요. 할머니가 기억을 잃어가는 게 너무 무섭고 힘들었어요. 지금 와서 돌아보면 할머니는 어떤 마음이셨을지 가늠도 안 되지만…. 그 때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기사를 많이 찾아봤고, 광유전학도 찾아보고, 치매 치료도 찾아봤어요. “기억”이라는 건 정말 신기한 지점을 가지고 있지 싶으면서도 “내가 어떻게 하면 되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일말의 가능성을 염두에 뒀던 것 같아요. 광유전학은 아직도 실현되지 않은 기술인데, 빛을 보면 기억의 특정한 구간을 삭제하거나 떠올릴 수 있다는 개념이에요. 기억이 항상 삭제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늘 마음 한 켠에 있어요. <Temper> 작업에서는 너무나 삭제하고 싶어했던 엄마의 이미지들이 어떤 형태로든 부활한다는 것을 목격하고 기억이 좀비같다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명확하게 구획할 수도 없지만 에너지처럼 무언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 기억은 물컹물컹한 덩어리 같아요. 제 작업에서도 불쑥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처럼 무언가를 되살리려고 하는 게 목표예요.


방금 말씀하신 역사를 들으니 상하님이 “기억”이라는 키워드에 천착하게 된 맥락이 좀 더 명확해지는 느낌이에요. 그렇게 기억에 천착하게 된 이후로 느꼈던 감정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저는 질척거리는 사람이에요. 기억이라는 말은 꺼내지 않으려고 해도 오늘의 인터뷰처럼 끊이지 않고 제게 들려와요. 개인적으로는 “테세우스의 배”개념을 무척 흥미롭게 생각하는데요, 복원 자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배를 하나하나 다시 짜 맞추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해보라는 이야기가 큰 울림을 주었어요. 붙잡으려는 마음, 지키려는 마음, 보려고 하는 마음들이 작업의 큰 주제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마음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시는 지점이 와 닿아요. 붙잡고, 지키고, 보려고 하는 마음은 지금 현재에 너무나 필요하고 구해야 하는 마음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마음들을 사진 매체 위에서 재현해 본 이유가 있을까요? 스스로 사진 매체를 다루는 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정말 충실하게 사진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찍는다는 행위는 의미의 선택이 강요되고,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에 때로는 사진 찍는 행위를 완벽하게 좋아할 수는 없어요. 사진이 아닌 다른 매체를 시도하는 것도 의미의 선택이 강요되는 순간을 사진적으로 재현해보고자 하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충분히 사진가적이라고 여겨요.
기억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변형과 재구성을 사진적인 재현으로 구현할 때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나요?
사진을 꼭 누군가가 이미지 하나하나로 봐줄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순간은 오래된 사진을 함께 들여다 보거나, 슬라이드 필름의 초점을 맞춰서 영사하고 네거티브 필름을 라이트 박스 위에서 함께 들여다보는 경험이에요.


그래서 저희가 오늘 함께 슬라이드와 네거티브 필름을 들여다 봤군요. 출판물로 구현된 <Missing Link>를 작가님과 함께 넘기며 들여다 본 일 역시 그렇고요. 작가님의 작업과 프린트를 살펴보면 표면이 열화되어 있거나, 스크래치가 발생해 있거나, 먼지나 벌레가 돌아다니는 비문증의 장면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이렇게 사진을 가공하는 이유도 있을까요?
제가 누군가의 사진을 볼 때, 사진 위에 얹힌 먼지같은 것들이 눈에 자주 들어왔어요. 만약 제가 사진을 하지 않았다면 대형 카메라에 접근할 일이 없었을텐데, 대형 카메라 작업은 먼지를 지우는 후가공이 필수예요. <Gather> 영상에 나오는 앨범도 이사를 계속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습기와 물곰팡이가 끼고, 사진이 변색되고 종이도 닳아헤진 앨범이에요. 앨범의 변색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게 느껴져요. <Gather> 영상을 만들 때에는 그런 것들을 구태여 보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어요.


<Missing Link>는 사진을 공들여서 책과 종이의 물질로 구현한 작업이기도 하잖아요. 이렇게 물질로 구현할 때는 무엇을 염두에 두셨나요? 서로 다른 평량과 질감의 종이들을 사용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Missing Link> 책의 디자인 작업을 함께 해준 친구들과 종이로 구현되는 것을 굉장히 많이 고민했어요. 전시장에서 꼭 책의 형태 안에 사진이 담기기 바라는 저의 요구가 있었어요. 영상이 함께 상영되는 전시장은 어둡기 마련인데, 이 환경 속에서 한 장 한 장 사진집을 넘겨보는 일 자체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젊은 사진 앨범을 넘기는 감각과 유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고민 때문에 손 끝의 감각으로 다가오는 종이의 질감을 예민하게 다뤘어요. 아주 가벼운 종이나, 사진용지가 아닌 종이를 사용해 보기도 하고. 한지나 매뉴얼지에 테스트 인쇄를 하는 실험을 하며 눈을 감고서도 한 장 한 장 넘겨볼 때에 손 끝의 감각들이 연결되도록 하자는 내부적인 목표가 있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의 젊은 사진 앨범을 넘기는 감각은 무엇이었을지 무척 궁금해요.
할머니는 아예 그 때의 이야기를 하고싶어 하지 않으세요. 할아버지께 배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면, 어차피 한강에 떠있지도 못 할 배인데 그런 걸 왜 알려달라고 하냐고 하세요. 그러다가도 제가 앨범을 꺼내 오면 “아 이 때는 이랬었지” 하고 말씀을 시작 한다거나, 넘겨보지 말라고 한 앨범 페이지를 꿋꿋이 넘기고 있으면 이야기를 이어나가기도 하세요. 이렇게 기억은 삭제되지 않고 잠재된 상태로 있다가 함께 앨범을 넘길 때 떠오르는 것처럼, 전시장에서도 관객 각자가 가진 경험들이 그들 안에서 떠오르기를 바랐어요.
지금까지 해오신 작업을 가감없이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상하님의 다음 작업도 궁금해지는데요, 다음 작업은 어떤 작업이 될까요?
우선 <Missing Link> 작업으로 더 이상 사진을 찍게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내일도 할머니 한 분을 뵈러 가기로 했는데, 사진 찍기를 위해서는 아니에요. 만남은 계속 이어질텐데, 이것도 작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또 준비하고 있는 전시가 있어서 생각보다 빠르게 다음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고 또 구멍을 통해 반대로 나오는 경험에 대한 작업이에요. 빛이 반대로 드나드는 것일 수도 있고, 할머니의 사진을 태워버린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도 새 작업을 구상할 때 영향 받았어요. 지금은 여기까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상하님의 다음 작업도 정말 기대가 되어요. 오늘 대화도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작가 소개
김상하
현재의 공간에 중첩된 다양한 시점의 기억을 관찰하며 그 흔적을 추적한다. 경험의 재생을 돕기 위한 다양한 방법론을 작업 안에서 실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