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되어 떠도는 사진들
“좋은 건 그냥 좋은 거야(いいモノは、よい).”
“아름다운 건 아름답다는 표현만으로도 충분해(美しいモノは、美しい).”
천년고도 교토에 살고 나서 자주 듣는 말들이다. 호(好)와 미(美)를 향한 그들의 장인 정신을 보고 있자면 그 자체로 숭고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어쩐지 폭력적이기도 하고, 사고를 멈추게 만드는 것 같아서 나는 웬만하면 입에 올리지 않으려 하고 있다.
단순히 “그냥 아름다워서 아름답다”라는 말만으로는 정리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불완전한 아름다움도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는 미학에 대하여 “그냥 아름다워서 아름답다”라는 말에 끌리는 나 자신이 있어서 복잡한 심경이 든다. 그래도 미학에는 분명히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감각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언어로 표현하려는 순간, 설명하려던 무엇인가의 일부 조각은 흘러넘치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오히려 그 흘러넘치는 조각들을 다시 줍기 위해 일단 흘러넘치도록 언어화하는 느낌도 있다.
사진을 찍고 이미지를 마주하는 것도 하나의 언어 활동이다. 이미지를 통해 감각적인 느낌을 공유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나 역시 설명되지 않는 감각을 계속해서 쫓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찍는 데 그치지 않고 사진집으로 엮고 싶다는 마음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뭔가 「남기고 싶어졌다」는 감정이 원초적으로 있는 것은 아닐까… 사진의 아버지 루이 다게르가 은판을 활용한 다게레오타입을 통해 회화가 담지 못했던 선명함과 삶에서 죽음까지 모든 풍경을 시각화했을 때, 또 이폴리트 바야르가 양화 방식으로 익사체로 가장한 최초의 세미누드 사진을 찍었을 때도 남기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을 것이다. 바야르가 일종의 「페이크 리얼리티」라는 기법을 사용한 것도 그가 사진이 「기록으로 남는다」라는 특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해본다. 진실을 찍되 가끔씩은 의도적으로 거짓을 찍기도 하는 것.아무튼 사진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찍히고, 무엇인가 남긴다.
「남긴다」라는 말도 더 세밀하게 생각해보니, 아마도 나는 결과의 단계보다는 더 이전의 단계, 즉 「왜 지금 이 순간을 남기고 싶어졌는가」「무엇을 바라보다가 남기고 싶어졌는가」 하는 과정 순간을 언어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운 좋게 남아 있는 사진들이 이후에 살아 있는 「나」에 의해 편집되어 사진집이 되었고, 나중에 글이 덧붙여졌을 뿐이라 생각한다.
사진 매체 자체에 구애받지 않는 아티스트들이 이미 존재하는 지금에도 나의 제작 활동에 있어서는 사진적 지각(写真的知覚)」방법 자체를 비틀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는다. 순수사진(straight photography)이라는 방법론 자체는 여전히 예술 안에서 유효한 제작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사진에 대한 사유 자체도 행위로서 그 의미가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사진을 찍는 순간의 시선과, 다시 바라보는 순간의 시선은 다를 수 있지만, 나에게 사진은 결국 기억, 기록, 진실과 거짓의 사이에서 발견하는 진실과 같은, 사진의 필수조건은 몸으로 하는 행위다. 찍는 마음, 바라보는 마음, 떠올리는 마음. 그 모두가 중요하다.
사진을 「묶어야겠다」라고 생각한 계기가 된 2022년의 스페인 순례길. 나는 35mm 흑백 필름 스물다섯 롤을 들고 32일간 약 800km를 걸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현실의 아름다움을 매일같이 만날 수 있었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라는 표현으로 충분했다. 자연, 풍경, 사건들. 그래서 여행을 끝내고 순례 사진집을 만들고자 했지만 그와 동시에 나의 순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감각이 공존하였다.나는 순례길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싶은 것은 아니였다.내가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왜 나는 뚜렷한 목적도 없이 약 800km를 걷고 있었는가, 그리고 왜 그 여정이 끝난 뒤에도, 순례의 감각으로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사유였다. 순례길은 없다. 나는 나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떠돌고 있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800km의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정리하고 기승전결을 풀어가는 방식은 뭔가 적합하지 않다고 느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아래에서 위로, 선을 긋고 길을 만들어 걷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지 않지만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라는 Nowhere의 감각과, 「하지만 지금 나는 여기 서 있다」라는 Now-here의 감각을 표현할 수 있는 사진집을 만들고 싶었다. 앞면과 뒷면이 있지만 없는 듯한 북 디자인을 고안했다.단편은 단편 그대로 존재해도 좋다. 서로 이어지지 않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맞닿아 있는 순수사진들을 통해, 독자 또한 그 흐름 속에 순례를 하는 듯한 감각 ,함께 표류하길 바랐다. 결과적으론 3년 뒤인 2025년 『Nowhere Dreamism』 을 출판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Nowhere Dreamism』의 후속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Nowhere Dreamism』이 떠도는 남자의 눈을 통한 시선이었다면, 다음은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시선으로 Nowhere한 장소에 있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고를 하면서 써 내려간 내가 나 자신이 떠돈 곳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떠돈 곳이 나 자신을 이야기하도록 했다.수록된 사진들과 이야기들은, 운 좋게 단편으로 잠시 남겨진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언젠가, 다른 조각들과 엮여 또 다른 형상으로 떠돌게 될 것이다.
사유하는 것, 대상을 대하는 태도, 빚다, 빛나다, 비다, 믿다, 빈다는 것. 4월 28일 오기시마
일본에 약 100명밖에 살지 않는 오기시마(男木島)라는 섬에서 세토우치 예술제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나는 작은 오두막에서 커피를 내리며 섬에서 지내고 있었다. 홍콩 출신의 도예가 Hoiyi Lami 씨와의 만남은 비가 내릴 듯 말 듯한 4월의 어스름한 날씨 속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그녀는 손님으로 찾아왔다. 이후 예술제 자원봉사 스태프로 섬에 남게 되었고, 우리는 몇 번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즉흥적인 퍼포먼스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커다란 천을 펼쳐서 진행하는 퍼포먼스라고 했다. 도예라는 매체에서 표현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던 그녀는 때로 자기 몸을 유약 속에 담그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어쩌면 완성된 그릇 자체보다는 그릇을 빚는 과정에서 손끝에 닿는 감각 같은 것, 그런 몸의 기억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물론 나는 타국의 낯선 땅에서 무언가를 시도하는 사람의 외로움이나 불안을 잘 알기에, 그런 아티스트의 의지를 응원하고 싶었다. 나는 그녀와 영어로 소통하며 그 내용을 섬 주민들에게 일본어로 전하고, 그들의 이해를 구했다. 하지만 섬 사람들에게는 교토에서 온 나도 외국에서 온 그녀도 똑같은‘외지인’이었을 것이다. 퍼포먼스를 열 수 있도록 설명은 했지만, 정작 사람들이 참여할지는 당일이 되어봐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퍼포먼스 당일, 그녀는 5×5미터의 거대한 천을 펼쳤다. 그러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아이들이 모이면 어른들도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쑥스러워하던 어른들도 이내 천천히 참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함께 천을 펼치고, 사람들을 그 안에 감쌌다.
거대한 천 속에는 섬 아이들, 예술제를 보러 온 가족들, 그리고 우리 같은 외지 예술가들이 함께 있었다. 예술가 부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가 베를린 국회의사당을 천으로 감싼 대지 미술 작품 「포장된 국회의사당」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안에 있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작지만 분명한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퍼포먼스가 끝날 무렵 흐렸던 하늘이 개었고, 햇빛이 바다를 비추었다.
나는 그녀의 퍼포먼스를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흙이 형태를 갖춰가는 그 촉감, 부드럽고, 빚어지는 느낌을 이미지로 떠올렸다. 빚다, 빛나다, 비다, 믿다, 빈다…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빚다’는 어떤 것을 어루만지고 바라보는 태도와 닿아 있다. ‘어루만지다’와 ‘바라보다’는 일본어 발음으로도 비슷한 느낌이 있다. 그렇게 기억의 편린, 넘쳐 흐른 감정의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이걸 ‘시적인 사유’이라고 부르는 걸지도 모른다.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에서도 말하듯, 나는 때때로 구체의 추상화와 반대로, 추상의 구체화 또한 필요하다고 느낀다. 너무 많이 반복되어 당연해진 이미지, 너무 익숙해져서 추상적으로 변해버린 어떤 고통들을 다시금 직시하는 일.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느끼는 일. 그런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적인 사유가 필요하다. 뭐라 해야 할까—공감이라든가, 상처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듯한 그런 마음의 태도 말이다.
이야기가 조금 새어버릴지도 모르지만 한일, 일한, 어느 쪽을 먼저 말하느냐에 따라 쉽게 꼬리표가 붙는 처지의 사람으로서, 한 가지만 사회에 이해를 바란다. 나는 철새처럼 살고 싶다. 철새는 누군가의 집 처마에 허락을 구하지 않고 둥지를 튼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새를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존재, 또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나도 그렇게, 그저 거부감 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스며드는 존재이고 싶다.
누군가에게 깊이 다가간다는 것은 조심스럽고 두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것을 뜨개질하듯 천천히, 끊어지지 않도록 이어가고 싶다.
혹 끊어지더라도 다시 매듭을 묶고 싶다. 다시 만나고 싶다. 그것이 철새의 바람이다.
독일 베를린 황혼의 석양. 셋이서 버스를 타고 나란히 앉았다.
두 친구가 내 앞에 앉았다. 한 명은 독일에서 오페라를 하는 일본인 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알바니아에서 베를린으로 이주한 지 10년 된 베테랑 베를리너다. 창밖 풍경이 내 등 뒤에서 앞으로, 거꾸로 흘러간다. 퇴근 시간인지 베를린의 버스에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약간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지 못한 채 서 있는 사람들이 버스의 흔들림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다.
왠지 모르게 안도감이 들어서 피로가 몰려왔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 피로였다. 떠돌다 도착한 거대한 도시 베를린에서의 오랜만의 재회. 이야기에 몰두하며 거리를 걷다 보니 '어쩜 베를린은 그렇게 크지 않을지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즐겁고 몰입한 시간을 보냈다.
햇살이 기분 좋은 휴일의 토요일. 즐거웠던 만큼 오랜만에 아드레날린이 많이 분비되었다. 일단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다시 눈을 뜨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니,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에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녀들과 창밖 풍경의 방향이 다르다. 그렇듯 당연히 함께 있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황혼의 시간이, 조금 더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함께 있는 시간이 우리만의 것 같아. 우리 스스로 만든 거야. 나는 너의 꿈속에 있고, 너는 내 꿈속에 있는 것 같아."
좋아하는 영화 「비포」 시리즈의 대사다. 나와 너, 너와 나. 흔한 연애 영화의 구성은 '나와 너'를 기반으로 하지만, 개인적으로 거기에 또 하나의 점을 더해 삼각형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어딘가 떠날 때에도 마음 맞는 사람들과의 3인 구성이 2인 구성보다 잘 맞는 경우가 많다. '나와 너'의 이항 관계는 열정적이고 몰입할 수 있지만, 내가 깊숙이 들어감으로써 서로 에고(Ego)를 부딪히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다 문득 관계가 식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3인 관계 속에서 나는 '바라보는' 관점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이라는 존재를 지우고, 일단 영화 관객처럼 이야기를 바라본다. 물론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지만, 비극이라도 나는 끝까지 자리에 앉아 계속 볼 수 있었다. 관객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런 타자성, 타자의 이야기를 적당한 거리감을 가지고 깊게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여백을 만들어주는 것이 3인이다. 3자관계다. 베를린의 석양에 물들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보는 너희들에게도 내가 그렇게 보이길 바랐다., 그리고 그럼 시점이 우리 셋 사이에 교차하고 있길 바랐다.
그리고 '내가 보는 너희들'이 아니라, '너에게도, 우리로서' 시점이 교차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 명은 그렇게 각자의 시점으로, 각자의 감정을 안고,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존재한다면 신은 사람의 마음속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세한 공간에 있다. 이 세상에 마법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힘이다. 끝내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래도 이해를 꿈꾸며 시간을 보내면 조금이나마 적당한 고독감과 적당한 행복감으로 마음이 치유된다.
그날은 신 국립미술관(Neue Nationalgalerie)에서 개최 중인 사진가 낸 골딘의 전시를 보러 갔다. 매춘부들, 성적 소수자 커뮤니티에 뛰어들어 사적이고 사적인 사진을 계속 찍은 그녀. 언뜻 보면 에로틱한 표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피사체인 사람들이 골딘에게 무언가를 맡겼다고 느끼게 하는 사진들이었다. 진부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모두 영혼의 일부가 담겨 있었다. 사진에 찍힌 사람들의 생명의 행방은 알 수 없다. 아마 이미 죽음을 맞은 사람도 있고, 아직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죽음. 가족도 친구도 모른다. 하지만 낸 골딘의 사진 속에서는 죽지 않은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존재는 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이야기와 기억은 골딘에게 맡겨져, 아직 살아 있다. 이것을 공적으로 이야기하는 의미. 이렇게 우연히 베를린에 모인 세 명이 (재회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사진들을 함께 관람한 우리가 다시 재회하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이 이야기가 전하는 감정의 일부를 안고 살아갈 것이라고 믿고 싶다.
「보이지 않는 것' ≠ '존재하지 않는 것」
사람들과 만나는 순간은, 그들의 이야기에 접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살았던 것」의 존재의 증거가 된다. 사진은 삶의 조각을 포착한다. 어쩔 수 없지 필연적으로, 포착해버린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사랑하고, 사진에는 애정이 있고, 애증의 깊이도 느낀다. 기억을 짊어지고, 빠져나올 수 없다.
누군가의 기억을 짊어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상실의 순간마저 함께 짊어진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그래서일까.사진을 통해 죽음을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은, 어쩐지 더 두텁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삶의 한순간을 포착함과 동시에 죽음을 마주하는 시선이기도 한 것 아닐까.
젠장, 또 진부한 표현을 쓰고 말았다.
「너희들 안에 있는 나」와 「내 안에 있는 너희들」이 동시에 존재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버스에서 내려 베를린 포럼에 석양을 보러 갔다. 시간은 18시 20분 경. 마치 베를린이라는 도시 자체가 사람들의 하루의 끝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베를린은 한때 파괴된 도시.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인지, 보이는 풍경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도시라기보다는 분주한 기억들이 팽창한 것과 같은 공간. 도시 전체가 콘크리트 무덤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층 빌딩도 없다. 산도 없다. 단지 하늘만이 유난히 넓다. 평평한 시야에 석양이 곧게 가라앉는다.
포럼의 옥상에서 우리는 그렇게 많은 말을 나누지 않는다. 각자가 풍경을 감상하고 있지만 카메라로 찍지는 않는다. 기념 사진 같은 것도 찍지 않는다. 단지, 문득, 바라본다.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직 약간의 석양의 여운이 남아 있다. 붉지도, 푸르지도 않은, 그 사이의 망설임이 느껴지는 색이다.
불안을 외면하지 않는 것, 3월 29일 라이프치히
앞으로의 계획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이 시기에 다시 독일에 온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춥고 흐린 날씨에 일본의 봄바람이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그런 나약함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약한 마음으로 인문학, 예술이라는 답 없는 세계에 뛰어들 자격이 있는가?"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타입이다. 하지만 솔직히 모든 예술가가 베토벤이나 오카모토 타로일 필요는 없다. 고독을 견디지 못해도, 견디는 척해도 괜찮다. 그래도 지금의 나는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않으면 금세 낭만주의적 태도에 빠져버릴 것 같아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예술가로서 성장하기 위해 의지할 수 있는 동료를 만드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고독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고(물론 실제로는 약간 조급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불안과 좋은 거리감을 가지고 지내는 것도 예술과 마주하며 얻은 강함이다. 예술이란 분야 안에서 불안을 안고 마주했기에, 맹목적인 낭만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람과 세상을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왜인지 독일에 온 지 일주일쯤 지나면서 눈물 나는 일이 많아졌다. 혼자 폐허를 돌아다니며 거기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흔적에, 시간에, 손길의 흔적들에 너무 몰입해서일까. 이유도 모른 채 글을 너무 많이 써서일까. 낸 골딘의 전시에 너무 마음을 쏟아서일까. 그냥 흐린 날씨 때문일까. 솔직히 모르겠다. 내 안의 24세 청년은 아직도 눈물이 많다. 괜찮다. 일본으로 돌아가 노동과 표현 사이의 일을 하며, 적당히 자신을 속이며 그럴 듯한 아우라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생활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으니 괜찮다. 지금은 이 눈물 많음에 솔직해지자. 눈물 뒤에는 웃을 수 있다. 반대로 웃으면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어제는 하늘이 맑았지만 비가 내렸다. 소나기였지만, 맑은 후 구름 사이에서 내려오는 빛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어딘가 슬픈 기분이 들었다. 흐림도 아니고 비도 아닌, 자신을 속일 수 없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어쩔 수 없는 상태.

최근 인터뷰 기사 편집 일을 하던 중 이런 말을 보았다.
"약한 존재를 돕지 않거나, 오히려 약한 나라를 정복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지구 환경이 이렇게 위기적인 상황인데도 여전히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넓은 의미에서 모두가 연결되어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자신의 나라만 좋으면 된다'라거나, '자신의 회사만 잘되면 된다'라거나, '자신만 좋으면 된다'라는 생각으로는 이 지구도 망가지고, 인간성도 잃게 될 것이다. 대통령 한 명이 바뀌었다고 해서 세계가 갑자기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양성이 무시되고, 지구도, 강하고 자극적인 것이 무언가를 지배하는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자신과 타자', '좌와 우',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 같은 이분법을 모두 없애고 제대로 대화하자, 대화의 캐치볼을 하자. 새로운 가치관을 제대로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제대로 자리에 앉아, 제대로 대화하자. 용기를 내어 자신을 드러내자. 그리고 판단하는 것을 멈추자.
모두에게는 드러내어도 나눌 수 없는 고독이 있다. 그렇다고 드러내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다. 드러내고 포옹하며 진정 공유하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자는 이야기가 하고 싶다.
기호의 우위를 잠시 내려놓고 냉정하게 개인의 눈으로, 당신이 가진 눈동자로, 먼저 오랫동안 바라보고 말을 거는 것, 그것은 정말 두려운 일일까. 눈을 마주치고, 바라보고, 말을 나누고,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같은 공간에서 머무는 것. 그렇게 지극히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수집해가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할 게 많다. 생명의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오해와 오독도 쌓이기에 그것을 풀기 위한 시간까지 생각하면 더욱 짧게 느껴진다. 사실 우리는 평화라는 공유된 최종 목적 위에 싸우고 거짓을 말하고 숨길 여유는 없을 것이다.
생명의 시간과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 나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살아간다. 자신이 나약해서 관계에 기대려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믿는 힘이 근원에 있기 때문에 관계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 보이는 틈새를 좋아하고, 카메라 없이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환경에 의존하며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개인보다 환경이 훨씬 압도적이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사랑한다. 슬픔도, 답답함도, 모두 받아들이고 싶다. 처음으로 제작한 사진집 『Nowhere Dreamism』 은 그런 관계 속에서 살아온 내 자신이 흔들려온 5년간의 이야기와 시선을 집약한 것이다. 다음 사진집은 환경과 타자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에게 더 초점을 맞추려 한다.
다시 환경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어제, 흐린 하늘 아래에서, 자신의 눈 사진을 50장 정도 찍었다.

인간은 불안과 마주할 때, 자신의 취약성과 직면한다. 하지만 그 취약성을 안고 한 걸음이라도 내딛으면 점점 단단한 사람이 되고, 타자, 자연, 세계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라는 데까지 최근에 성찰했다. 이제 취약한 자신을 술로 얼버무리며 적당히 달래는 것은 그만두자. 그럴 때일수록 약함을 제대로 말로 표현하거나, 사진으로 담거나, 공적인 장소에 놓는 강함을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나만의 사회 참여라고 믿는다.
불안을 완전히 믿는 것. 흔들리는 것을 계속 포착하는 것. 인간은 추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 같은 인간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성악설로 이끄는 격언은 말하고 싶지 않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아름답다. 인생은 덧없지만 아름답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고대의 사람들은 물의 빛에 생명을 느끼고, 보석 같은 빛나는 것들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도 사람이라는 생명의 덧없는 빛남을 믿고 싶다.
그래, 생명의 빛나는 순간이다. 독일에 와서,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가 지난달 출산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기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지지할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그 아이도, 너라는 생명도. 누군가의 빛을 꺼뜨리지 않고, 함께 바라보고, 함께 웃어줄 수 있는 어른.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도 누군가의 생명의 빛을 믿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그건 내가 지금까지 해온 작업과 이름 붙일 수 없는 관계들 속에서 살아내온 시간들이 나에게 남겨준 중요한 감각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의지를 가지고 싶다. 허상 속에서도 허구 속에서도 의지를 가지고 살고 싶다.
말로 표현이 안 되면 사진으로 남기자. 사진이 안 되면 시선으로 기억하자. 기억이 사라지면, 마음에 흔적이라도 남기자. 그렇게라도 누군가의 생의 단편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2025년 3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아직 추운 날씨 속에서, 나는 작고 따뜻한 생명의 시작과 마주하며, 다시 한번 이 세계를, 사람을, 사랑할 준비를 한다.

작가 소개
Jong
三浦 宗民, 미우라 소우민(구명: 고종민, 高宗民). 이름만으로도 이미 꼬리표가 붙는 사람. Jong 씨든, Jong 짱이든, 편하게 불러주세요.
2025년 현재는 교토를 거점으로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론 연구와 통역・번역 활동을 통해 자아와 타자, 언어와 국가라는 경계를 탐색하고 허무는 실천을 하며, 사진을 통해 애정과 애증이 공존하는 삶을 살아내려 한다. 사진집 『Nowhere Dreamism』(2025) 출판.
편집 도움
유승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