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훈 인터뷰 - 북쪽 끝에 가면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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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17

 

 

황예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김찬훈
안녕하세요. 김찬훈입니다. 사진 작업하고 있어요.

황예지
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지 궁금해요.

김찬훈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야구부를 했었어요. 2012년이었으니까 당시 운동부는 규율이 강한 환경이었는데, 그 환경을 견디지 못해서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어떤 체계에 대한 불만도 커졌죠.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시절이니까 이것저것 찾아보다 지인의 권유로 사진학원에 가게 되었는데, 학원에서 사진은 세상의 불합리한 부분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오래 설명을 해주더라고요. 당시에 저에게 그 부분이 꽤 매혹적으로 들렸어요. 그런데 대학에 가서 사진을 하다 보니 사진이 가지고 있는 개방성에 오히려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요. 사진으로 세상을 바꾼다거나 불화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느끼기도 했고, 그렇다면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사진을 하면 항상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명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라 생각해요.

황예지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게 되는지 좀 궁금했어요.

김찬훈
저는 원래 밖에서 걷거나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 되게 좋아해요. 그냥 정처 없이 떠돌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것들에서 궁금증이 생길 때가 많거든요. 작업도 대체로 그런 데서부터 시작해요. 현장에서 마주치는 것들 때문에 질문이 생기고, 그 호기심에 휩쓸려가면서 이미지를 계속 모으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걸 둘러싼 이야기도 더 찾아보게 되고요. 이미 정리되어 있는 정보보다 현장에서 알 수 있는 여러 이야기가 그 장소를 더 입체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고 느껴요. 그래서 되도록 현장에 오래 있으려고 하고, 오래 걷고 보고 생각하는 시간으로 작업 전반을 이끌어가는 것 같아요.

 

 

김찬훈, 내리리, 150x188cm, Archival Pigment Print, 2020

 

김찬훈, 신상리, 133x170cm, Archival Pigment Print, 2019

 

VERNACULA MAP, 2021

 

 

황예지
「닳은 풍경」부터 얘기를 해볼까요?

김상하
「닳은 풍경」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작업인가요?

김찬훈
닳은 풍경은 두 개의 시리즈가 있어요. 첫 시리즈는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작은 마을로 이사하면서 시작했어요. 한적하고 고요한 풍경을 상상하고 갔는데 주거단지가 상당히 복잡하지만, 또 한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런 복합적인 풍경에 관심을 가지며 진행했고, 두 번째 시리즈는 서울로 돌아온 뒤, 이전에 촬영했던 주거 형태와 비슷한 건축을 버내큘러 건축의 맥락에서 다시 바라보며 시작했어요. 저는 우리나라의 버내큘러 건축을 거주민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 기존 건축을 끊임없이 변형해 온 과정으로 보았는데요. 그런 변화가 드러나는 세부 요소들을 모으고, 분류하고, 도식화하며 이어간 작업이에요.

김상하
이 도표가 어떤 건지 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김찬훈
변형된 건축의 요소들은 지역이 달라도 비슷한 양상으로 반복해서 나타났어요. 형태는 조금씩 달라도 만들어진 목적이나 사용 방식은 유사했거든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이것들이 유전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옛날에 생물학의 분류 체계를 본 적이 있는데, 생물도 구조나 기능의 연관성을 바탕으로 계통을 정리하잖아요. 그래서 이것들도 그런 식으로 분류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계속 모아놓고 보니까 집을 짓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성격들이 있었어요. 방어, 지형, 경계, 재료, 장식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흥미로웠던 건 이런 요소들이 따로 떨어져 작동한다기보다, 결국 하나의 집 안에서 같이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우선은 그 다섯 가지를 기준으로 분류 체계를 만들었고요. 그런데 실제로 보다 보니까 하나의 요소가 하나의 범주에만 속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어떤 건 이중, 삼중으로도 겹쳐 있었어요. 그래서 분류를 언어 체계처럼 고정된 방식보다, 하나의 도형 안에서 요소들이 분리되기도 하고 다시 결합되기도 하는 형식으로 만들어보게 됐어요.

 

 

김찬훈, 닳은 풍경 II, 2021-2024

 

김찬훈, 닳은 풍경 II, 2021-2024

 

김찬훈, 닳은 풍경 II, 2021-2024

 

김찬훈, 닳은 풍경 II, 2021-2024

 

 

김상하
낯선 장소에서 느꼈던 건축적인 생경함이 「닳은 풍경 2」에서는 형식적인 발견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어요. 촬영 과정도 궁금해요.

김찬훈
처음에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모아나갔어요. 그때는 이렇게 비슷한 형태가 반복해서 나타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닳은 풍경 1」에서는 건축에서 느껴지는 조형적인 면에 더 관심이 있었다면, 「닳은 풍경 2」에서는 건축을 둘러싼 이야기들로 관심이 옮겨가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촬영도 단순히 형태를 발견하고 찍는 데서 끝나지 않고, 왜 이런 형태가 생겼는지, 이 지역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집이 지어지고 유지되어 왔는지를 같이 보게 되더라고요. 우리나라가 압축성장을 하면서 서울로 몰리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주택 공급이 급격하게 늘어났고, 그 과정에서 지역의 성격이 바뀐 곳들도 많았잖아요. 그런데 당시 사용되던 재료나 집을 유지보수하는 방식에는 여전히 비슷한 점들이 많았고요. 그런 역사와 지역적 맥락을 찾아가는 데 더 시간을 쓰게 되면서,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일구어온 주거의 양식이 보이기 시작했고, 지역마다의 공통점과 차이도 조금씩 구분해서 보게 됐어요.

김상하
그때는 어디에 거주하셨어요?

김찬훈
당시엔 서울 강동구에 살면서 서대문구, 동대문구에 자주 갔었던 기억이 있어요.

김상하
작업이 찬훈 님의 궤적을 따라가기도 하네요.

김찬훈
맞아요. 제가 머물렀던 생활 반경이 항상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어요. 그래서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황예지
이런 장면들은 어떻게 발견하신 건가요?

김찬훈
이 작업은 촬영하는 것 외의 과정이 더 많았던 작업이었어요. 처음에는 현장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계속 모아갔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이것들을 어떤 맥락에서 읽어야 하는지, 또 어떻게 군집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나라 주택의 역사나 서울 각 지역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게 됐고요. 그러다 보니까 이미 여러 번 갔던 곳들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알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전에는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볼 수가 있었고, 이미 촬영된 것도 다시 보면서 인식할 수 있었어요.

황예지
리서치와 작업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도 궁금했어요.

김찬훈
작업을 하다 보면 상상을 많이 하게 돼요. 그런 상상은 사실 끝도 없이 펼쳐지거든요. 리서치는 여러 갈래의 상상들을 더 구체화시키고 좁혀주면서 계속 조정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평화로라는 길과 이곳의 풍경이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 같은 걸 두고도 여러 방향으로 상상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어떤 자료를 찾아보거나, 실제로 그 풍경을 보러 가는 길부터 사람들을 만나기까지의 과정, 만나서 듣는 이야기들을 통해 머릿속에만 있는 상상이 구체화될 때도 있고, 아예 뒤집힐 때도 있었거든요. 이런 과정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태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황예지
이런 장소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생긴 것 같아요?

김찬훈
이사를 자주 다녔던 개인적인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어릴 때는 누구나 자기가 속한 지역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저는 커가면서 지역을 크게 옮겨 다닌 적이 많았고, 서울 안에서도 지역마다 문화나 생활방식, 사람들의 성향이 달라지는 걸 보면서 자랐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저를 이루는 어떤 기억이나 관습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분절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늘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동네를 반복해서 걷는다거나, 자주 가는 장소를 만들려고 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계속 장소하고 관계를 맺으려고 했었어요.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계속 지역을 옮겨 다니잖아요. 그러면서 장소도 이전과는 다른 의미나 형태로 조금씩 변해가고요. 그래서 장소라는 게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달라지는 상태로 보였던 것 같아요.

황예지
뭔가 민물과 썰물처럼, 지역에 사람이 들어왔다가 빠지고를 반복하는 흐름에 관심이 가시는 건가요? 아니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 더 관심이 가시는 건가요?

김찬훈
지금의 장소를 이루는 것은 단지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정서나 생활방식 같은 것들도 여전히 그 장소 안에 남아 있다고 느끼거든요. 그래서 저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해가는지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닳은 풍경 2」에 나오는 집들의 형태는 오랜 시간 동안 생활 방식이 반복되고 시간이 축적되면서 만들어진 결과라고 생각해요. 동시에 그런 모습은 도시개발 정책 같은 더 큰 조건들도 함께 작용해서 형성된 것이고요. 현재 그곳을 이루고 있는 것들에 관심이 있지만, 그 현재를 단일한 시간으로만 보지는 않으려 해요. 과거의 것들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지금 사는 사람들이 그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면서 장소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황예지
이 인터뷰를 읽는 분들은 찬훈 님의 리서치 소스도 궁금해할 것 같아요. 작업의 중추가 되었던 책이나 작품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찬훈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해요. 사진이랑 완전히 다른 매체이기도 한데,  비슷한 지점도 많다고 느끼거든요. 특히 영화 안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표현들에 관심이 가요. 최근에 인상 깊게 본 건 자파르 파나히의 『노 베어스』인데요. 이 영화는 출국이 금지된 감독이 국경 근처의 한 마을에 머물면서 원격으로 촬영을 지켜보는 동안, 국경을 넘으려는 연인들의 이야기와 마을 안의 오래된 관습에 묶인 또 다른 관계가 겹쳐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영화는 국경이라는 물리적인 경계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두려움과 통제까지 같이 보여주고요. 제가 특히 흥미롭게 봤던 건, 이 영화에서 촬영이 단순히 사실을 드러내는 행위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카메라는 눈앞의 현실을 담고 있는데, 실제로 사람들을 움직이고 사태를 바꾸는 건 두려움이나 불신, 미신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더라고요. 이미지는 어떤 사실을 가져오지만, 그 사실이 곧바로 진실이 되지 않는 거죠. 그 주변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이미지의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지점들이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김상하
정말 카메라를 다루는 사람한테 너무 매력적인 작업일 것 같아요. 특히 아까 『노 베어스』도 말씀해 주셨지만, 어느 순간 셔터를 눌러야 되는지 자체가 사진가의 숙명 같은 문제이기도 하잖아요.

김찬훈
맞아요. 녹화 버튼을 헷갈려서 찍어야 하는 상황에서 못 찍고 찍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찍는 장면을 엄청 웃으면서 봤던 기억이 나요. 촬영을 한다는 건 어떤 윤리적인 조건이나 선택을 강제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 상황 속에서 우연히 찍힌 것이 갖는 다른 의미나 가능성을 갖게 되는 점도 재미있었어요.

황예지
저는 찬훈 님이 사진 매체를 되게 정확히, 사진답게, 고도로 정확하게 다룬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김찬훈
그게 어떤 의미일까요?

황예지
제 생각에는 사진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결핍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사진과 조각을 결합하거나 영상으로 확장하는 등 매체적인 과도기를 겪는 경우가 있는데, 찬훈 님은 사진이라는 매체에 굉장히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사진은 어떤 매체인지 궁금했습니다.

김찬훈
어떤 말로 명확하게 하기는 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작업하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사진은 결국 계속 밖에 나가서 무언가를 보게 만드는 것 같아요. 밖에서 뭔가를 관찰하고, 거기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면서 결국은 선택을 해야 하잖아요. 어디서 찍을지, 어느 위치에서 볼지,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어떤 사진을 사용할지까지 계속 결정해야만 했고요. 현실을 전부 다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여지가 생기고 그렇기 때문에 허구도 같이 따라오는 것 같아요. 결국 무언가를 보고, 촬영하고, 고르는 모든 행위에서 한 사람의 인식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여전히 이런 특성이 동력이 됩니다.

황예지
학부 시절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학교의 교육 방식이나 수업 경험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도 듣고 싶고요. 너무 싫었을 수도 있고 좋았을 수도 있고요.

김찬훈
학교에 영상이나 상업 사진처럼 실기 중심의 수업들이 잘되어 있었는데 사진에 대해 고민해보고 생각할 수 있는 수업은 상대적으로 없었어요. 1, 2학년 때인데 그 당시에는 상업 사진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3학년 때 들었던 한 수업에서 사진 자체를 어떻게 생각할 건지, 그리고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지점을 만들 수 있었어요. 

김상하
그럼 「닳은 풍경 1」 시리즈는 졸업 과정에서 만들어진 작업인가요?

김찬훈
2019년.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졸업 때까지 했던 작업이에요. 대학교 3학년 때, 방금 말한 수업의 일환으로 만든 건데요. 그전까지만 해도 사진에 내 관점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기도 했고, 헤매기도 했거든요. 당시에 그런 관점이 미약하지만 생겨나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그건 결국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생각이 트게 된 시기에 시도했던 작업이에요.

김상하
그전에는 카메라로 어떤 걸 봤나요?

김찬훈
고등학교 3학년 때 찍고 싶었지만 시의적절하지 않아서 못 찍었었는데, 대학에 입학하고 고등학교 야구부를 다시 찾아가 1년 정도 찍었어요. 어떤 대단한 주제의식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안 좋았던 기억에 다시 방문하면서 그 기억을 그대로 두지 않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김상하, 황예지
궁금하다. 진짜 사진 같이 실으면 너무 좋을 텐데요.

김찬훈
너무 부끄럽네요. (웃음)

 

 

김찬훈, 산곡동 의정부시, 2024

 

 

김상하, 황예지
들판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김찬훈
서울 동북부 끝으로 이사하면서 ‘평화로’라는 이름의 도로를 알게 되었어요. 그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군사시설과 주거단지, 철거를 앞둔 작은 마을들이 점진적으로 나타났어요. 집으로 가는 길에 놓인 풍경이 굉장히 생경했고, 이런 풍경과 평화로라는 이름 사이에 어떤 아이러니가 있다고 느껴지더라고요. 평화로는 서울 북부에서 철원까지 이어진 국도인데 길을 따라 즉흥적으로 나서게 되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황예지
「들판」 작업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사진에 인물이 더 적극적으로 등장하는데요. 정물과 인물을 다룰 때 감각이 다른지, 아니면 비슷한지 궁금했어요.

김찬훈
아무래도 인물을 본격적으로 촬영한 건 처음이다 보니까 차이를 더 크게 느낀 것 같아요. 제가 사는 곳과 이곳의 문화나 역사가 달랐기 때문에 저는 항상 외부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곳의 복잡성이나 이야기를 전부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고요. 그렇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노력했는데, 인물을 촬영하는 건 결국 우리가 일상에서 사람하고 관계 맺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사람과 관계를 맺다 보면 그 사람을 전부 이해할 수도 없고 또 그 사람에게 휩쓸리면서 살아가는 순간들이 많잖아요. 촬영하는 몇 시간 동안 멀어지거나 가까워지기도 하는 과정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 거죠. 결국 나와 타인의 관계는 굉장히 유동적인 상태에 있었어요. 그 안에서 휩쓸려갔다가 다시 조정해나가면서 촬영하는 내내 제 위치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이런 상황을 자연스레 따라가보기도 했었어요.

황예지
결국 감성과 이성 사이를 계속 조절해야 하잖아요. 어느 순간이 적절하다고 느껴지세요?

김찬훈
인물뿐만 아니라 많은 대상들은 모두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진은 단면으로만 나타나잖아요. 저는 거기서 생기는 모호함을 좋아하는데, 감성으로 치우치면 감정적인 것에 끌려가는 것 같고, 반대로 너무 이성적이면 분석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은 계속 그 중간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인물을 다루는 건 처음이다 보니까, 현장에서 어느 순간이 적절한지 바로 알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너무 어색하다고 느꼈던 순간에 제가 생각했던 적당한 거리감이 나올 때도 있었고요. 아직까지는 어떤 순간이 적절하다는 것을 안다고 할 수 없어서 현장에서 여러 방식으로 계속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김상하
촬영하면서 인물과의 관계에서 생겼던 일화가 있을까요?

김찬훈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러다 보면 이미지가 특정한 의미로 고착되어서 조심성을 느껴요.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슷한 경험이 반복됐던 것 같아요. 사람에 대한 관심도 다른 대상들과 마찬가지로 여기 있는 이유가 뭘까, 어디에서 왔을까 같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됐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만나본 사람들 중에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보다 어떤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된 사람들이 더 많았어요. 그러면서 개인사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되었는데, 개인의 역사와 장소가 가진 역사가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대표화된 정보만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삶들이 있었고, 제가 알고 있던 건 정말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사람을 만나면서 제가 사람이나 장소를 인식하고 있던 방식이 생각보다 많이 좁았다는 걸 느꼈어요. 이런 경험은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이 됐습니다. 

 

김찬훈, 전곡읍 연천군 #2, 2024

 

김찬훈, 전곡읍 연천군 #3, 2024

 

김찬훈, 소요동 동두천시, 2025

 

김찬훈, 호원마을 의정부시, 2024

 

 

황예지
「들판」의 흐름을 보면, 엔딩으로 갈수록 점점 분단의 경계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촬영하면서 어떤 감각을 따라가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찬훈
평화로의 북쪽 끝은 철원이고, 군사시설 때문에 길이 막혀 있어서 더 못 가게 되어 있어요. 북쪽으로 간다는 건 실제로 그런 경로를 따라가는 일이기도 했고, 경로의 특성이 강제하는 상황들도 분명 있었어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 길은 어디든 갈 수 있게 해주잖아요. 도시와 멀어질수록 도시의 체계나 시스템도 느슨해지고, 어딘가로 진입할 수 있는 틈도 많아졌고요. 그래서 이 작업을 하면서 그만큼 더 떠돌아다녀야 했고, 어디든 들어갈 수 있었고, 누구든 만날 수 있었어요. 작은 마을들이나 공사장, 버려진 집, 그리고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 직접 만날 수 있게 된 거죠. 그런 풍경은 사람과 장소가 관계를 맺으면서 천천히 바뀌는 것처럼 보였고, 때로는 생경하게 다가오기도 했고요. 그렇게 계속 펼쳐지는 풍경을 따라가려 했습니다.

황예지
‘들판’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중립적으로 느껴지면서도, 사진과 함께 보면 오히려 반어적으로 읽히는 것 같아요. 이 제목은 어떻게 정하게 되셨나요?

김찬훈
평화로의 북쪽 끝에 가면 들판이랑 넓은 평야가 펼쳐져요. 그곳이 과거에는 도시였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태에요. 이 풍경이 엄청 아름답고 목가적으로 보이다가도, 또 너무 광활해서 계속 보고 있으면 오히려 긴장감이 생기거든요. 그런데 이런 양가적인 느낌은 그 장소 자체만의 느낌은 아니었어요. 저는 북쪽 끝에 간다 했을 때, 그 장소까지 가는 길에서 겪은 것도 장소를 인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길을 따라가면서 궁금하면 내려서 떠돌아보는데, 처음에는 군사적인 조건 같은 것 때문에 긴장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경계를 쉽게 드나들면서, 긴장감이 일상적인 배경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길을 따라 사람들과 장소가 관계를 맺으면서 장소의 의미나 모습이 계속 변화하는 것을 봤어요. 이런 모습들은 사람들과 풍경의 시간이 얽혀 하나의 큰 막을 이루는 것 같았고요. 들판에 도착했을 때, 길에서 봐왔던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고 느껴졌어요. 이런 감각이 서정적으로 다가왔고, 자연스레 제목으로 이어졌습니다.

황예지
사진을 보면서 저는 “이 사람 왜 이렇게 느긋하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김찬훈
처음 듣는 얘기라 되게 재미있게 느껴져요. 스스로를 돌아보면 저는 꽤 현대적인 사람이거든요. 인터넷 하나로 거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고, 외부적인 자극에 예민하고, 그만큼 조급함도 많이 느끼고요.(웃음) 어디에 사느냐는 한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주잖아요. 저도 이 길을 따라 제가 속한 환경이 바뀌면서 새로운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환경이 바뀔 때 사람들이나 풍경을 어떤 방식으로 접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곳의 장소들과 사람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 동안 이곳에서 두터운 관계를 만들어왔어요. 그리고 천천히 용도나 의미가 바뀌어가는 장소들을 접할 때도 많았고요. 그럴 때면 짧고 가벼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았어요. 사진에 담기는 아주 짧은 순간을 위해서라도 더 오래 머물면서 봐야 했고요. 이곳의 속도가 느리다고 느꼈고 제 몸을 이 속도에 맞춰 움직이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 작업에 큰 부분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김상하
저도 비슷하게, 작가 개인의 느긋함이라기보다는 작업 자체의 호흡에서 느긋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특히 결말을 유예하는 태도에서요. 그래서 「들판」이 완결된 이야기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진행 중인 이야기처럼 느껴졌는데, 지금도 진행 중인 작업이라고 봐도 괜찮을까요?

 

 

김찬훈, 동두천동 동두천시 #4, 2025

 

김찬훈, 동두천동 동두천시 #2, 2024

 

김찬훈
이 작업의 끝을 냈다고 생각해요. 물론 더 할 수 있었을 것이고, 형식적으로 더 정교하게 다듬어볼 수 있는 부분도 여전히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작업은 그런 식으로 계속 밀어붙인다고 해도 언젠가 명확한 답에 도달하는 종류의 작업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비슷한 이미지를 계속 모아나가는 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일단락을 짓고, 시간이 더 지나 다시 보거나, 더 이어간다면 이곳에서 느꼈던 다른 문제들을 떼어다가 확장해보는 방향을 선택할 것 같아요. 동시에 저한테 이 작업 자체가 잠정적인 형태이기도 한데요. 이 길에는 굉장히 두터운 역사가 있고, 그 시간들이 지금 이곳의 사람, 장소, 풍경에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어요. 저는 그걸 분명하게 알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시간을 전부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길을 따라 떠돌면서 만난 사람들,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에 느껴졌던 정서적인 것에 더 관심이 갔어요. 그래서 이 작업의 완성된 상태는 조금 더 열려 있고 잠정적인 상태로 남아 있었으면 했어요.

황예지
저는 「들판」을 보면서 반복되는 인상을 많이 받았어요. 돌이 계속 등장하고, 임시적인 산림이나 터, 땅 같은 요소들이 반복되면서 어떤 스피리추얼한 감각도 느껴졌고요. 이 작업을 스스로 다큐멘터리로 보시는지, 아니면 다른 차원의 작업으로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김찬훈
처음에 그것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정서적으로 먼저 끌렸어요. 그것들을 보면 도시의 질서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처럼 느껴졌거든요. 현장에서 대상에 대한 정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저의 인식이 더 중요했어요. 이후에 따로 정보를 찾아보면서 그 대상들이 수많은 다른 환경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사회적인 맥락과도 맞닿아 있었어요. 그래서 이 작업이 다큐멘터리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무언가를 설명하는 식으로 묘사하거나, 어떤 사회적 기록물을 남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것들을 접했을 때 저의 인식을 사진 안에서 어떻게 더 감각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를 더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의 어법 안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서 제가 느꼈던 길의 감각을 저 나름의 방식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김찬훈, 갈말읍 철원군, 2025

 

김찬훈, 동두천동 동두천시 #1, 2025

 

김찬훈, 동송읍 철원군 #2, 2025

 

황예지
사진의 선택과 탈락에 대해서도 궁금해요.

김상하
「들판」에서는 어떤 기준이 있었을까요?
김찬훈
명확한 규칙이나 기준이 있었던 건 아닌데요. 이번 작업에서는 시각적으로 강하게 보이는 장면들이나 상징적인 장면들을 많이 봤고, 그런 사진들로만 쏠리지 않으려고 더 조심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사진들을 펼쳐두고 작업이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서 계속 보면서 눈에 익히려고 했어요. 그러면서 전반적인 무드나 모티프를 같이 생각했는데, 그런 것들도 너무 반복되면 루즈해지거나 답답해질 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전체 안에서 밸런스가 잘 유지되는지, 리듬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계속 보면서 조정했어요.

황예지
누군가에게 작업을 보여줬을 때 받았던 흥미로운 피드백이 있었나요?

김찬훈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중에 들었던 말인데, “이제 그만 찍어라”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때는 눈에 불을 키고 매일 매일 찍으러 다니던 때였고, 가장 즐거운 시기였어요. 그때 이런 조언을 들으니 ‘무슨 소리지?’ 싶었지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작업의 질이나 양의 문제를 떠나서, 결국 작업과 어떻게 거리를 두고 생각하느냐의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결국 작업을 한다는 건 그 안에 계속 다시 들어가보면서 나는 어떻고, 작업에는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고민해보고, 선택하는 시간도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김상하
「들판」은 스코프 3인에 선정됐던 작업이잖아요. 그때는 어떤 피드백을 받으셨나요?

김찬훈
당시에는 피드백보다, 작업을 보고 난 뒤의 인상에 가까운 말을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고독하다, 쓸쓸하다, 무겁다, 같이 여행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항상 구조나 형식,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고, 또 그런 부분들을 신경 쓰면서 작업해왔는데, 그때는 작업의 구조를 이해하기 앞서 하나의 경험으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경험이 좋았어요. 

황예지
스코프, 사진비평상에 선정된 느낌은 어땠어요? 제도 안으로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있었나요?

김찬훈
그런 느낌은 크게 못 받았던 것 같아요. 사진비평상 때는 너무 어렸어요. 그래서 전시를 한다는 것이 새로운 일이었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과정에서 생각의 폭이 좁기도 했고, 좋은 전시를 판가름하면서 만들어가기보다 일단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라고 마음먹고 주변 반응을 아예 신경 쓰지 않고 했었어요. 그리고 스코프를 하면서는 거의 매일을 작업에 파묻혀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들을 고민하게 되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제도라는 틀을 떠나서 혼자 파묻혀보기도 하고 동료들과 이야기하고 조언도 구하는 그 과정이 엄청나게 좋았어요.

황예지
스코프나 그런 공모들은 약간 그런 느낌을 주려나, 항상 궁금했었어요.

김찬훈
그런 건 아직까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눈치를 못 챈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진짜 아닐 수도 있고. 그런데 아직까지 혼자 사부작사부작 무언가 만들어보는 시간이 좋아요.

김상하
스코프 발표하는 공간이 엄청 큰 홀이잖아요. 그때 경험을 조금 더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찬훈
꽤 큰 영화관에서 발표를 해야 했어요. 그래서 제 작업의 구조랑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되도록 말을 많이 하기보다 사진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 공간이 너무 크고, 어둡고, 앞에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니… 별별 말을 다했던 것 같아서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황예지
그게 몇 년 전이죠?

김찬훈
작년, 2025년입니다.

김상하
그러면 1차는 그냥 포트폴리오만 디지털로 보내고, 2차 때 선정된 3인이 그렇게 발표를 하는 건가요?

김찬훈
1차 때 열 명이 되고 2차 때 세 명이 선정돼요. 그렇게 3차에서 한 명을 선정하는 방식이었어요.

김상하
엄청난 싸움을 하셨네요.

황예지
서바이벌이다, 서바이벌.

황예지
그런 경험들을 지나서, 요즘의 관심사나 요즘 하고 있는 작업은 무엇일까요?

김찬훈
요즘에 작업을 한다기보다 다음 작업을 하기 위해서 이것 저것 찾아보고 있어요. 항상 돌아다니면서 본 것에 흥미를 느껴 갑자기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들판」이라는 작업은 저에게 있어서 되게 많은 생각을 열어준 작업인 거죠. 아직 생각이 번뜩 나지 않아서 여기저기 좀 방황하면서 시간을 보내겠지만 이것들을 떼어다가 천천히 확장시켜 나가보려 해요.

 

황예지
찬훈 씨가 고독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도 궁금해요. 왜냐하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야 발생되는 사진이니까, 본인은 이걸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그리고 작가로서 지낸다는 게 막막할 수도 있는데 계속 이어나가는 방법을 누군가에게 조언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김찬훈
많은 사람들이 작업을 보고 저를 쓸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정말 재미있는 게 이번 작업을 할 당시에는 그런 감정을 전혀 못 느꼈어요. 그게 어쩌면 현장에서 사람을 많이 만났고, 또 마음 어딘가가 동해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래도 요즘엔 좀 쓸쓸함을 알 것도 같아요. 하하. 그럴때면… 혼자 슬퍼할 때도 있는데, 보통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또 그런 쓸쓸함을 금방 잊기도 해요. 무엇보다 동료들 만나서 하루 종일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은데 이것도 큰 동력이 돼요. 비슷한 처지라 그런가?(웃음)

김상하
동료분들은 다 사진 쪽에 있는 분들인가요?

김찬훈
대부분이 사진하는 친구들인데, 다른 친구들이 비슷한 예술 분야에 있어요.

황예지
이런 웹진을 운영해보니까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동료를 대체 어떻게 찾느냐”라는 질문이었어요. 뭔가 사진과를 다녀서 사진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랑, 사진을 막 시작해서 동료를 찾아보는 거랑은 되게 다른 느낌일 것 같거든요. 찬훈 님은 마음 맞는 동료를 만나기까지 어떤 시간이 있었는지, 또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도 궁금해요.

김찬훈
거의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어요. 운이 좋은 케이스인 것 같아요. 그리고 학교 밖에서 만난 동료들도 있는데, 제가 낯을 많이 가리긴 하지만 굉장한 용기를 가지고 말을 걸고, 저의 집요한 집착으로 친해진 경우도 있어요.

황예지
적극성과 용기.

김찬훈
아니, 계속 이렇게 다 말하면 안 되는데.

김상하
아니요, 좋아요. 저도 그거 궁금해요. 아까 「들판」을 찍을 당시에, 중간에 찍어두기는 했는데 시리즈로 공개는 안 했다는 어떤 작업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거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김찬훈
그전에도 작업이 되진 못했지만 돌아다니면서 뭘 많이 했었어요. 그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아있는 건 친구 중에 전자음악을 하는 친구가 있거든요. 저도 그런 음악을 좋아하는데, 그 친구가 음악을 크게 들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레이빙이라는 문화가 있다고 해서 거기서 꽤 오래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어요.

김상하
레이빙 조금만 더 물어봐도 돼요? 어떻게 보면 이동과 정조의 감각이 레이빙에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레이빙의 순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과정도 궁금해요.

김찬훈
처음 어떤 파티가 열리는 베뉴에 갔는데, 사람들이 서로 몸을 부딪히면서 놀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다 같이 굴다리를 찾아다니면서 밤새 음악을 틀어놓고 놀았던 적도 많았고요. 저는 그게 그냥 재미있었어요. 당시에는 좀 쓸쓸했던 때이기도 했는데, 그런 시간 안에서 오히려 어떤 안정감이 생기기도 했던 것 같아요. 또 장소에 크게 제약받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요. 그래서 처음부터 어떤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기보다, 그 안에 같이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찍게 됐던 것 같아요.

김상하
뭔가 아까 그 외로움과 고독함과 연결되기도 하네요.

김찬훈
그러고 보니 저도 모르게 탈출구를 계속 찾고 있네요.

황예지
마지막으로 뭔가 정리의 멘트 해주실 수 있나요?

김찬훈
한마디로 정리가 안 되는데요.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김상하
가상의 독자에게 한마디.

황예지
양지훈 작가는 귀엽게 봐달라고 했어요.

김상하
언제든지 마음이 바뀔 수 있으니 귀엽게 봐달라.

황예지
자기가 틀린 말을 했을 수도 있다.

김찬훈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어제 했던 말이랑 지금 하고 있는 말이랑 너무 다르니까요.

김상하황예지
맞아.

김찬훈
인터뷰가 평생 인터넷 세계를 떠돌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서네요.(웃음) 제 생각은 내일도 당장 바뀔 수 있는 거니까 열린 마음으로 봐주시길.

 

 

 작가 소개

김찬훈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가다. 사람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고민한다. 이번에 소개한 ‘닳은 풍경’, ‘들판’ 을 작업했다.